대학에 들어가면서 접한 경영학이 올해로 꼭 50년을 맞게 됐다. 반세기를 경영학 연구에 매달리며 한국적 경영학의 정체성을 고민하면서 살아왔던 터라 이번 상남경영학자상 수상은 그 감회가 남다르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그동안 한국적 경영학의 정체성을 고민하면서 가졌던 생각들을 반추해 보고자 한다.

한국의 경영학은 해방 이후 미국에서 경영학 개념이 들어오면서 현재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 이전 일제강점기에는 독일의 경영경제학이 주로 대학에서 주류를 이루었으며, 따라서 한국은 경영학의 양대 산맥인 독일과 미국의 그것이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쳐온 셈이다.

그렇지만 해방 이후 우리나라가 미국 자본주의 그늘에서 성장해 온지라 경영학도 미국학풍의 일변도로 발전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선진 경영이론이나 기법이 우리 가치관이나 문화에 적합하지 않는 경우들이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경제 규모가 커가고 한국 기업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보다 효과적인 경영 노하우를 찾아 나서면서 필자는 일찍이 한국적 경영학의 정립 필요성을 절감한 바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실사구시를 지향하면서 많은 책들을 저술했다. 이들의 학문적 업적들을 살펴볼 때, 실학을 한국적 경영학의 원류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 고장 남도에서 유배생활을 보낸 실학자 정약용 선생은 이 실학을 대표하는 분이다. 18년 동안 많은 역작을 남겼는데, 강진은 그 덕분에 공무원을 비롯한 관광객들이 다산학 공부를 위해 다녀가는 명소가 됐다. 다산수련원 앞마당에 ‘기록하기를 좋아하라’, ‘동트기 전에 일어나라’라고 적은 다산의 말씀비가 있는데, 아마도 새벽같이 일어나 부단히 메모하는 과정에서 목민심서와 같은 노작을 만들었을 것이다.

남도에는 장흥의 위백규와 화순의 하백원 등 걸출한 실학자들이 있다. 필자는 몇년 전 규남 하백원의 생애와 업적을 경영학적인 관점에서 재조명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하백원 선생이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 시조와 서간문 등에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윤리 경영, 독서 경영, 혁신 경영, 실천 경영을 강조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매우 자랑스러웠다.

문득 독일 문호 괴테의 명언이 떠오른다. 괴테는 “학문의 역사는 학문 그 자체”라는 말을 남겼다. 그렇다면 경영학의 역사는 경영학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더 나아가 한국 경영학도 기업사, 기업가사 연구에서 우리는 경영학을 제대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래 전 필자는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열린 한일 경영사학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때 한 일본 교수는 필자에게 물었다.

“일본의 전통 상인으로 오사카 상인, 교토 상인이 있는데 한국은 어떤 상인이 있느냐”는 그의 물음에 개성 상인, 의주 상인, 동래 상인을 들먹이다가 문득 우리 지역에는 어떤 상인들이 있었는지 의문이 생겼다. 귀국하자마자 찾기 시작해 발굴한 상인이 바로 병영 상인이었다. “북에는 송상(松商), 남에는 병상(兵商)” 이라는 말이 당시 회자될 정도였기 때문에 학문적 연구 소재로는 충분했다. 더욱이 600년 역사의 병영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전통상인이었기에, 필자가 학회에 발표한 병영 상인은 국내학자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게 됐다.

마침 올해는 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는 뜻 깊은 해다. 그래서 한국경영사학회장인 필자는 춘계학술대회를 천년고도 나주에서 개최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모여 든 경영학자들이 우리 고장에 와서 한국적 경영학을 위해 토론할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필자는 남은 세월, 앞으로도 한국적 경영학의 정립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자 한다.

끝으로 이 자리를 빌려 경영학자로서 소명의식을 갖고 계속해 연구에 정진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 상남경영학자상의 제정자, LG 그룹 구자경 명예회장님께 수상자로서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