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말에서 2월 초가 되면 세계의 눈과 귀는 스위스의 작은 도시 ‘다보스’에 집중된다. 이 도시에서 인류가 고민해야할 다양한 의제와 관련 논의들이 미디어 매체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스위스 동부 그라우뷘덴에 위치한 인구 1만4000명의 다보스는 1970년대 초반, 클라우스 슈밥 교수가 경제 포럼을 기획하고 개최하기 전까지, 단지 눈이 많이 내리는 휴양 마을에 불과했다. 그러나 약 반세기만에 다보스는 세계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모여 정치, 경제, 사회분야의 글로벌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무대로 성장하였다. 포럼이 개최될 때마다 이 작은 도시는 언론의 주목을 받고, 전 세계인에게 각인된다. 도시 이미지는 휴양 마을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지식 혁신 플랫폼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었다. 도시의 홍보 효과는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필자는 ‘4차 산업 혁명’, ‘공유 미래’ 등 미래 컨텐츠와 관련된 포럼의 내용에도 관심이 높다. 그러나 도시 연구자로서 그 무대가 되는 다보스라는 작은 소도시의 발전 과정에 관심이 더 간다. 도시의 흥망성쇠에 인류의 공통 관심사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지역에서도 인류가 고민하는 의제를 기획, 선정하여 세계인과 동행하는 도시를 발굴, 육성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와 동행하고 선도할 수 있는 국제적 잠재력이 높은 도시 가운데 하나가 여수이다. 근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여수는 인류 발전과 함께한 해양을 주제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국제 이벤트를 개최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2012 세계박람회 이후에 여수 선언과 여수 프로젝트를 통해 해양 환경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박람회 유산으로서 다양한 전시회의 공간을 보유하고, 무형의 자산으로서 국제 이벤트 개최에 대한 자부심과 성숙한 시민 의식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수가 해양과 환경에 대한 전 인류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미래 의제를 선점하여 다보스와 같은 도시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고민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 우선, 해양 관련 전문가들의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해양 관련 이슈를 중심으로 국가, 지방정부, 시민사회, 학계, 정·재계,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논의할 수 있는 오픈 플랫폼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관련 커뮤니티가 자생적으로 조직화되고, 실현가능한 정책과 관련 전문기술 축적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해양 분야 공공성을 강화하는 기구를 유치하는 것이다. 여수의 박람회장 시설을 중심으로 해양 자원, 기후 변화, 연안 환경을 연구하는 협의체와 사무국을 조직하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같은 활동은 앞에서 제기한 ‘전문가 네트워크’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세 번째는 포럼을 비롯한 다양한 전시행사·회의를 개최하는 데 여수만의 특화된 색채를 가미하는 것이다. 전시·회의를 기획함에 있어 환경의 수용력을 고려하여 오염 배출원을 절감하는 ‘그린(Green)형 마이스(MICE)’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네 번째는 도시의 미래상과 연계하여 여수를 다보스로 전환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재 중앙 정부는 국제 회의와 전시 등에 있어서 행·재정적 지원을 우선하는 ‘국제 회의 도시’를 지정하고 있지만, 광주와 제주를 제외하고 수도권과 동남권에 편중되고 있다. 아쉽게도 여수가 컨벤션시설 등 인프라 측면에서 지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여수가 국제 회의 도시로 지정될 수 있도록 인프라 지정 기준을 변경하거나 지정기준에 부합하는 컨벤션 시설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여수가 국제적인 해양관련 의제를 주도하고 해양 전문 기술과 관련한 지식과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축적할 수 있다면, 다보스와 같은 도시 파워브랜드 구축이 가능하다. 이를 바탕으로 남중권의 거점 도시, 국제적 해양 도시로 여수의 위상은 더욱 더 도약하게 될 것이다. 해양 관련 국제적 의제를 창출하고 선도하는 혁신 플랫폼 ‘한국의 다보스, 여수’가 되기를 남도인의 한사람으로, 도시 연구자로서 응원하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