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주 5·18기념재단 연구원] 5·18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에 부쳐
2018년 02월 01일(목) 00:00 가가
히틀러의 나치는 수용소에 갇혀 영양실조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유태인들을 ‘무젤만’이라고 불렀다. 무젤만은 이슬람교도를 뜻하는 독일어이지만, 당시에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마저 거세당한 살아있는 시체를 뜻하는 은어로 통용되었다. 유태인 작가 프리모 레비는 이른바 무젤만으로서 자신의 수용소 생활 경험을 담은 작품을 발표했는데, 책의 제목 ‘이것이 인간인가?’에 무젤만의 절망적인 상황이 충분히 압축되어 있다. 레비의 책이 출간된 이후 무젤만은 인종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힌 비도덕적 권력이 인간을 얼마나 비극적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는가를 묘사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나치가 유태인에 대해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광주 항쟁 당시에 전두환 내란 세력은 광주 시민을 무젤만으로 취급했다. 광주 학살은 정치적, 도덕적으로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권력이 인간을 향해 저지를 수 있는 야만성의 극단이며, 이들이 자국의 시민을 향하여 자행한 전쟁 수준의 폭력은 광주 시민을 무젤만으로 간주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이들이 광주 시민만을 무젤만으로 여긴 건 아니었다. 이들이 정권을 잡은 5공화국 시절에 수많은 대한민국 시민들이 무젤만처럼 고문당하고 죽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박종철과 이한열이 이들에게는 무젤만이었다.
5·18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최근 전두환 내란 세력이 남긴 각종 문서를 검토하면서 광주시민을 무젤만으로 여겼던 이들의 경악스러운 행태를 재삼 확인하고 전율했다. 이들은 광주 시민을 폭도로 묘사하는 것조차 부족해서 양아치, 걸인, 전과자, 사회 부적응자, 빨갱이라 불렀고, 광주 시민의 저항을 ‘일망타진’해야 할 난동으로 간주했다.
계엄사령부는 광주 상황을 청와대에 보고하는 문건에 ‘광주 지역 난동’이라는 제목을 달았으며, 광주 진압 계획을 세우면서 ‘소탕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광주의 상황을 정리한 보고서에서 광주시민을 지칭하여 ‘놈’이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차용했다. 심지어 이들은 이른바 광주 사태가 같은 시기에 발생한 미국의 흑인 폭동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분석하였다. 차별에 반대하는 흑인의 집단 저항에 대한 인종주의적 편견이 광주 시민의 그것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유태인을 무젤만으로 본 나치의 파시즘과 궤를 같이 하는 발언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들이 국가 폭력에 담대하게 맞서는 광주 시민을 말그대로 ‘게릴라’로 묘사하고 엄청난 무력을 앞세운 진압 계획을 추진했다는 사실이다. 무력 진압을 찬성했던 한미연합사 사령관조차도 당초의 광주 진압 작전에 대해 수많은 인명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으며, 계엄사 작전일지에는 10만 명 정도의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메모가 발견되었다. 헬기 사격이나 전투기 폭격설이 단순한 소문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자, 광주 시민을 무젤만으로 여기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는 계획이다.
광주 항쟁은 그 비극성과 영웅성의 두 측면에서 세계사적으로 유사한 예를 찾기 힘든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헌정주의를 표방하는 근대 국가가 폭력 수단을 총동원하여 자국의 시민을 대량 학살했다는 점에서 비극성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광주 시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야만적인 국가 폭력에 무기를 들고 조직적으로 저항하였으며, 비록 잠깐 동안이지만 폭압적 국가를 퇴치하고 놀라운 자기 조절 능력으로 자치 공동체를 만들어낸 영웅성을 시현하였다. 전후 현대 국가에서 변방의 시민이 무장을 하고 국가를 자신들의 영역 밖으로 몰아낸 예는 1980년 대한민국 광주가 유일하다. 광주 시민은 인본주의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저항으로 무젤만이 되기를 거부했다.
광주 항쟁은 나아가 그 이전까지 한국 사회를 지배하던 정치적, 사회적, 이념적 토양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광주 항쟁을 기점으로 새로운 민족주의가 부상하였으며, 유신 정권이라는 암흑기에 갇혀있었던 시민 사회의 정치적 각성이 폭발적으로 전개되어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견인하는 주력 세력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시민 사회의 성장으로 민주화와 정치 발전에 대한 염원은 도저한 사회 운동으로 발전하였으며,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5·18 진상규명 특별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광주 시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시민 전체를 무젤만으로 취급했던 세력들이 전혀 회개하지 않고 광주 학살의 진상을 왜곡하고 있는데 말이다. 5·18 진상규명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은 대한민국이 사회 정의와 인본주의의 가치를 지향하는 문명 국가임을 확인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지금이 무젤만 대우를 받았던 광주 시민이 명예를 회복하는 마지막 기회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들이 국가 폭력에 담대하게 맞서는 광주 시민을 말그대로 ‘게릴라’로 묘사하고 엄청난 무력을 앞세운 진압 계획을 추진했다는 사실이다. 무력 진압을 찬성했던 한미연합사 사령관조차도 당초의 광주 진압 작전에 대해 수많은 인명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으며, 계엄사 작전일지에는 10만 명 정도의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메모가 발견되었다. 헬기 사격이나 전투기 폭격설이 단순한 소문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자, 광주 시민을 무젤만으로 여기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는 계획이다.
광주 항쟁은 그 비극성과 영웅성의 두 측면에서 세계사적으로 유사한 예를 찾기 힘든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헌정주의를 표방하는 근대 국가가 폭력 수단을 총동원하여 자국의 시민을 대량 학살했다는 점에서 비극성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광주 시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야만적인 국가 폭력에 무기를 들고 조직적으로 저항하였으며, 비록 잠깐 동안이지만 폭압적 국가를 퇴치하고 놀라운 자기 조절 능력으로 자치 공동체를 만들어낸 영웅성을 시현하였다. 전후 현대 국가에서 변방의 시민이 무장을 하고 국가를 자신들의 영역 밖으로 몰아낸 예는 1980년 대한민국 광주가 유일하다. 광주 시민은 인본주의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저항으로 무젤만이 되기를 거부했다.
광주 항쟁은 나아가 그 이전까지 한국 사회를 지배하던 정치적, 사회적, 이념적 토양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광주 항쟁을 기점으로 새로운 민족주의가 부상하였으며, 유신 정권이라는 암흑기에 갇혀있었던 시민 사회의 정치적 각성이 폭발적으로 전개되어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견인하는 주력 세력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시민 사회의 성장으로 민주화와 정치 발전에 대한 염원은 도저한 사회 운동으로 발전하였으며,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5·18 진상규명 특별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광주 시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시민 전체를 무젤만으로 취급했던 세력들이 전혀 회개하지 않고 광주 학살의 진상을 왜곡하고 있는데 말이다. 5·18 진상규명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은 대한민국이 사회 정의와 인본주의의 가치를 지향하는 문명 국가임을 확인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지금이 무젤만 대우를 받았던 광주 시민이 명예를 회복하는 마지막 기회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