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국가들의 지방 자치와 지방 분권 실태를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역사적 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봉건제 국가의 유산을 물려받은 유럽이나 근대에 신생국으로 태어난 미국에서는 지방 자치가 활발한 편이다.

특히 연방 국가인 미국의 경우, 수도부터가 최대 도시 뉴욕이 아닌 작은 도시 워싱턴이고, 유명한 기업의 본사도 중소 도시에 소재하고 있다. 이웃나라인 일본도 입헌 군주제 국가이지만, ‘번’(藩)이라는 봉건 통치 유산을 이어받아 지방 자치가 발달했다. 이에 반해 사회주의 국가나 한 때 사회주의 체제였던 중국·러시아·동유럽 국가들은 오늘날 중앙 집권 국가에 속한다.

한국은 전통적인 중앙 집권 국가다. 우리나라에서 중앙 집권제가 뿌리를 내리게 된 데는, 오랜 기간 왕조 국가를 유지해온 유교적 통치 이데올로기 즉 성리학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고 보내라”는 속담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사람과 돈이 몰리는 수도권 집중 현상은 지방을 피폐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오늘날 지방의 문제는 중앙 대 지방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문제이다. 지방 분권과 함께 균형 발전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필자는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 가정에서 자랐다. 서울이나 외국 유학기간을 빼놓고는 계속 광주·전남에서 생활했다. 그래서 지방의 실정과 애환을 비교적 잘 알고 있는 편이며, 뼛속 깊이 지방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지방 대학 교수로 일하면서 지자체와 업무적으로 협력할 기회도 많았다. 그 과정에서 오늘날 수도권이 비대하고 지방이 소멸 위기에 처한 근본 원인은 중앙 집권적 국가 경영 방식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따라서 하루 빨리 국정 운영의 패러다임을 ‘실질적인 분권과 자치’로 전환하여 국토의 균형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지방 분권의 가치는 지방이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도록 중앙 정부로부터의 자율성을 확보하는데 있다. 중앙 권한을 획기적으로 지방에 이양하고 자치 입법권과 과세 자주권을 보장하여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분권 국가를 실현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지방 분권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지방이 가진 역동성과 다양성을 국정에 잘 반영하면 국가 전체적으로 도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풀뿌리 주민 자치가 강화되고 지방 정부의 자치 역량이 제고되어 수도권과 지방이 균형 있게 발전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중앙 정부는 ‘갑’이고 지방 정부는 ‘을’이라는 그릇된 인식도 바로 잡아야 한다. 고사 위기에 처한 지방의 공교육을 살리고 지방 대학을 육성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지난 대선 때 각 당이 공약한대로 올해 6월 지방 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 투표가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제1야당이 딴 소리를 하고 있어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다. 따라서 개헌 이전이라도 국회에서 입법 활동을 통해 지방 분권 과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개헌 이후 법을 고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관련 법령부터 제정하거나 개정하도록 해야 한다.

우선 지방 이양 일괄법 제정과 지방 자치법 개정을 통해 자치단체 사무 범위를 확대하고 자치단체간 협약 제도와 광역 연합 제도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지난 14일 청와대가 발표한 권력 기관 개혁 방안 가운데 자치 경찰제 확대를 위해서는 자치 경찰법을 제정해야 한다. 지방 재정 분야에 있어서는 지방 소비세와 지방 소득세를 확대하도록 지방세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을 현재 8 대 2에서 장차 6 대 4까지 개선하겠다는 것이 정부·여당의 복안이다. 자주 재원을 확충하기 위해 지방 교부세 제도 혁신과 함께 지방 교부세율을 올리도록 지방 교부세법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지방 재정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막기 위해 강력한 재정 조정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고향 사랑 기부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고향 사랑 기부금법도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