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용주 작가·콘텐츠 기획자]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삶을 이해하는가
2018년 01월 23일(화) 00:00 가가
광주의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음악극 ‘푸른 수염의 시간’ 공연을 두 번 보았다. 팔십분씩 두 번, 대단한 일백육십분이었다. 서울에 돌아온 그 주말부터 ‘푸른 수염’에 대한 글들을 찾아 읽었다. 이 음악극에 모티브를 준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과 벨라 바르톡의 오페라 ‘푸른 수염의 성’에 관한 글들을 읽으면 공연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독서는 기대를 채우지 못했다. 자료들은 넘쳤지만 무엇을 읽어도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페로와 바르톡은 희미한 참조점으로 사용되었을 뿐이어서 ‘푸른 수염의 시간’에 별다른 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푸른 수염’이나 카트린느 브레이야의 영화 ‘푸른 수염’이 그러했듯 ‘푸른 수염의 시간’은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공연으로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도움이 된 것은 공연 브로셔였다. 거기에서 작가의 말과 음악 감독의 말과 연출의 말을 여러 번 읽었다. “이 음악극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푸른 수염의 이야기를 되풀이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의 바탕에 놓인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과 질문을 담으려 했다”고 한다. ‘푸른 수염의 시간’에는 살고 싶다는 욕망이 넘실댔다. 피칠갑의 비밀을 안고서도 살고 싶은 이가 있고, 그 비밀을 발견하고 살(아남)고 싶은 이가 있다. 이야기의 기본은 푸른 수염과 그 아내인데, 공연에서는 그것이 명확하지 않았다. 둘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또 더 많은 존재들이었다. 무용수들과 악사들은 서로 겹치고, 바꿔 연기하고, 혹은 한 몸에 수많은 운명과 목숨들이 다 들어와 있는 것처럼 굴었다. 누가 누구인지를 짐작할 수 없었다. 춤추는 세 명이 각자의 고정된 배역을 맡고 있는 것인지, 악사와 가수들도 덩달아 어떠한 존재들로 의인화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헷갈렸다. 의도된 혼란이 극을 일관했다.
음악감독은 “각자가 가진 삶의 무게만큼 이 작품을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고 말한다. 연출은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무대 퍼포먼스는 어떠한 시선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관객들이 순간순간 능동적으로 선택하여 감상하실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고 설명한다. 결국 혼란의 매듭을 푸는 것은 관객에게 달려 있다는 이야기다.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다. 몇십 미터가 넘도록 길게 짜인 큰 무대는 세 개의 공간으로 구획되어 있었고, 그를 따라 빙 둘러선 가변 무대에 앉은 관객들은 무대의 일부만을 자기화할 수 있었다. 조명과 무대 미술이 만들어내는 무대의 여러 모습들은 앉은 자리에 따라 달리 보였다. 노래 소리와 악기 소리는 공평하게 분배되었을 테지만 그들의 퍼포먼스는 거리에 따라 보이지 않거나 작거나 희미했다.
춤은 더 그러했다. 천정에서 내려온 피의 드레스를 입고 장윤나가 춤을 추는 몇 분간을 정면에서 마주보던 순간, 행복하면서 궁금해졌다. 다른 구역의 자리에서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보이는 걸까. 내가 보듯이 운명의 격투라는 실감이 날까. 생각하다 깨달았다. 아, 완전히 다른 느낌이겠구나. 그것은 그저 보는 위치에 따른 느낌의 차이가 아니라, 질문 자체가 다르게 심어져 있는 것이리라 싶었다.
우리는 어떻게 이 푸른 수염 이야기를 받아들이는가. 어떻게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수용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가? 고집불통. 자기 자리에서 제가 상상해오던 버릇대로 그렇게 한다. 제 식으로 이해하고, 그래서 제 식으로 오해한다.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와 삶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지 않다. 오해가 우리의 디폴트다.
‘푸른 수염의 시간’은 앉은자리 하나로 그것을 깨우쳐 주었다. 누가 누구인지 모르게 춤을 추어서 그것을 깨우쳐 주었다. 저것은 푸른 수염인가, 아내인가, 혹은 ‘나’인가? 소리로도 깨우쳐 주었다. 소프라노와 경기민요 전수자의 구음이 서로 교차하고, 첼로와 아쟁이 그러하고, 피아노와 대금이, 피아노와 멜로디온이 경쟁하고 따라하고 혼자 튀어나가다 다시 섞이면서 가르쳐 주었다. 이 의도된 혼란을 어떻게 풀 것인가. 다른 자리에 가보는 것이다. 다른 자리에 서서(앉아서! 누워서!) 상상해보는 것이다.
공연장의 한쪽 벽을 덮고 있던 커튼이 열리고, 큰 문이 열렸다. 그곳으로 장윤나가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김봉수는 문 혹은 벽, 혹은 제 인생 전체를 메고 기듯이 걸었다. 무대 저 멀리에선 김재승이 가라앉는 존재가 되어 허우적대고 있었다. 열려 있던 문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와 극장 안에 일순 냉기가 돌았다. 다시 묻는다. 우리는 누구인가? 허우적대고 있는 저이인가, 기듯이 걷는 저이인가, 문을 연 저이인가. 자꾸 다른 자리에 가보면 그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재공연을 기대한다. 나의 다음 자리는 어디인지 궁금하다.
도움이 된 것은 공연 브로셔였다. 거기에서 작가의 말과 음악 감독의 말과 연출의 말을 여러 번 읽었다. “이 음악극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푸른 수염의 이야기를 되풀이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의 바탕에 놓인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과 질문을 담으려 했다”고 한다. ‘푸른 수염의 시간’에는 살고 싶다는 욕망이 넘실댔다. 피칠갑의 비밀을 안고서도 살고 싶은 이가 있고, 그 비밀을 발견하고 살(아남)고 싶은 이가 있다. 이야기의 기본은 푸른 수염과 그 아내인데, 공연에서는 그것이 명확하지 않았다. 둘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또 더 많은 존재들이었다. 무용수들과 악사들은 서로 겹치고, 바꿔 연기하고, 혹은 한 몸에 수많은 운명과 목숨들이 다 들어와 있는 것처럼 굴었다. 누가 누구인지를 짐작할 수 없었다. 춤추는 세 명이 각자의 고정된 배역을 맡고 있는 것인지, 악사와 가수들도 덩달아 어떠한 존재들로 의인화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헷갈렸다. 의도된 혼란이 극을 일관했다.
우리는 어떻게 이 푸른 수염 이야기를 받아들이는가. 어떻게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수용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가? 고집불통. 자기 자리에서 제가 상상해오던 버릇대로 그렇게 한다. 제 식으로 이해하고, 그래서 제 식으로 오해한다.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와 삶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지 않다. 오해가 우리의 디폴트다.
‘푸른 수염의 시간’은 앉은자리 하나로 그것을 깨우쳐 주었다. 누가 누구인지 모르게 춤을 추어서 그것을 깨우쳐 주었다. 저것은 푸른 수염인가, 아내인가, 혹은 ‘나’인가? 소리로도 깨우쳐 주었다. 소프라노와 경기민요 전수자의 구음이 서로 교차하고, 첼로와 아쟁이 그러하고, 피아노와 대금이, 피아노와 멜로디온이 경쟁하고 따라하고 혼자 튀어나가다 다시 섞이면서 가르쳐 주었다. 이 의도된 혼란을 어떻게 풀 것인가. 다른 자리에 가보는 것이다. 다른 자리에 서서(앉아서! 누워서!) 상상해보는 것이다.
공연장의 한쪽 벽을 덮고 있던 커튼이 열리고, 큰 문이 열렸다. 그곳으로 장윤나가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김봉수는 문 혹은 벽, 혹은 제 인생 전체를 메고 기듯이 걸었다. 무대 저 멀리에선 김재승이 가라앉는 존재가 되어 허우적대고 있었다. 열려 있던 문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와 극장 안에 일순 냉기가 돌았다. 다시 묻는다. 우리는 누구인가? 허우적대고 있는 저이인가, 기듯이 걷는 저이인가, 문을 연 저이인가. 자꾸 다른 자리에 가보면 그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재공연을 기대한다. 나의 다음 자리는 어디인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