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사건이 발생한 지 38년째다. ‘12·12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12월12일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날이다. 그 현장에서 광주의 한 젊은이가 숭고하게 산화했다. 어쩌면 광주민주화운동의 시작이고 최초의 희생자이다.

1979년 12월 12일 당시 23세였던 정선엽 병장은 국방부 헌병대 소속으로 제대를 불과 3개월 앞두고 있었다.

최규하 당시 대통령과 노재현 국방장관이 무력에 굴복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적으로 체포하려 했다. 박희도 1공수여단장 병력이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정 병장은 “아무도 들여보낼 수 없다”며 강력히 맞섰다. 결국 그는 국방 의무를 다하는 과정에서 신군부에 맞서 끝까지 싸우다 산화했다.

살기 등등한 1300여 명의 공수부대가 총을 난사하자 이미 기가 꺾인 경비병들이 총을 버리고 손을 들고 말았던 그 현장에서 광주의 젊은이는 당당하게 맞섰다. 자신의 총을 빼앗으려던 공수부대에 맞선 정 병장은 단호했다. 오히려 그들에게 발길질을 한 순간 공수부대원들의 총구는 불을 뿜고 말았다. 물론 총격전이 있었으니 반란군 측에서도 희생자가 있었다. 반란군 측이었던 박모 상병은 수경사 33헌병대 소속으로 정승화 계엄사령관 체포조로 동원됐다.

정 병장이 산화한 그날 어머니 한점순씨는 혼절했다. “아들에게 일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고 영문도 모른 채 영암에서 국군통합병원으로 달려갔으나, 아들은 피범벅이 된 채 어머니를 맞았다. “곧 제대해 편히 모시겠다”는 아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어머니에게 돌아왔다.

그 후 가족들은 진실을 모른 채 숨죽여 살다가 사건 발생 10년이 지난 후에야 한 병사로부터 ‘정 병장의 죽음의 진실’을 전해 듣고 또 한 번 통곡해야 했다. 그날 초병들이 거의 다 투항했지만 정 병장만이 유일하게 위치를 사수했다고 한다.

동생의 사망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간 정훈채(당시 주택은행 지점장)씨는 분노했다. 정씨는 “국군수도통합병원에 갔더니 박 상병과 동생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며 “둘 다 억울하게 숨진 것은 마찬가지인데 박 상병은 신군부 쪽이어서 당당하게 장례를 치렀다. 동생은 진압을 당한 입장이라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고 처음에는 국립묘지에 묻힐 수 없었다”고 분개했다.

가족들의 탄원에 못 이겨 신군부는 뒤늦게 국립묘지 한 귀퉁이를 내주었다.

세상을 떠난 아들처럼 어머니도 지금은 세상을 떠났다. 아들을 가슴에 품고 생을 살다 가신 것이다. 가족은 풍비박산났다. 그 일 이후 형은 목회자의 길로 나아가서 지금은 외국에 거주하고 있다.

당시 사망한 김오랑 중령은 육사 동기들의 노력과 정치권의 관심으로 뒤늦게나마 추모비와 훈장이 추서됐다. 그런데 초병으로 끝까지 임무를 다하다 숨진 정 병장에게는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어떤 훈장도 추서되지 않았다. 훈장도 계급에 따라 추서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고 정선엽 병장은 광주 동신고를 졸업하고 조선대 공과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필자와는 고교에서 광주흥사단 활동을 함께하는 등 동문 수학한 사이다. 그래서 동신고 총동창회에서는 정 병장을 기억해야 할 동문으로 정해 지난 5월에 모교에 소담한 기념수를 심었다. 학교 재단과 유선 교장 선생님과 임현모 총동창회장의 노력이 있었다.

매년 12월 12일이면 의로운 군인 정선엽이 더 생각이 나고 가슴이 뭉클하다. 그는 서울 동작동 현충원 국립묘지 8묘역 2판 38315호에 묻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