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북 고창의 한 오리 농가와 순천만 습지 야생 조류 분변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안타까움과 우려를 느낄 새도 없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발빠르게 뛰어다녔다.

하루는 시·군의 방역실태를 점검하기 위해 현장에 나갔다. 방역 실태를 점검하고 있는데 한 상인으로부터 푸념 섞인 불만의 목소리를 들었다.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데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발생하니 죽을 맛이라는 볼멘소리였다. 그 말은 들은 순간 명치에 무언가 걸린 것 같이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공직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당연한 현상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서 AI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때는 지난 2003년이었다. 그 후 지속적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했고, 급기야는 여러 번의 형태 변형까지 거쳐 더욱 강력한 존재가 돼 위용을 떨쳤다. 잊지 못할 2016년, 그 해에는 한 달 만에 전국적으로 2000만마리가 넘는 가금류가 살처분돼 매몰되는 일이 있었다.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당시 농가에서는 이를 재난이라 부르며 한탄과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달갑지 않은 손님이 올해도 여지없이 찾아왔다. 쫓을 방도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어지간히 쉬운 일이 아니다. 농가의 시름을 덜어줄 방도가 과연 없을까?

AI 바이러스는 전파가 매우 빠르고 병원성이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발병 원인을 입증하지 못했지만 대체로 철새의 이동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일까? 감염된 철새로부터 농장의 가축들이 감염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유입을 차단하는 것이 해답일 것이다.

AI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전남도는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20일 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발족해 상시 운영체제로 전환했다. 거점 소독 시설 설치를 전 시·군으로 확대하고 축산 차량에 대한 소독도 강화했다. 또한, 철새 도래지의 차단 방역을 강화하고 관계 부서와 합동점검반을 꾸려 전 시·군에 대한 일제 점검도 실시했다.

그러나 AI 바이러스 문제 해결이 비단 정부와 지자체만의 몫일까? 유감스럽게도 대답은 ‘노’(No)다. 축산 농가에서 나몰라하고 방역 이행 사항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축산 농가에 다시 돌아가게 된다. ‘기본’을 지키려는 축산 농가의 의지, 그것이 지금 필요한 때이다.

그렇다면, 그 ‘기본’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일종의 행동 수칙이다. 간단히 언급하자면 먼저 AI 바이러스 방역 지역에 소재한 축산 농가에서는 방역기관의 허가 없이 가축의 농장 입식이나 농장 밖 반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가축과 접촉한 사람은 해당 지역 출발 이전에 손과 신발을 세척하고 외부 옷에 소독제를 살포해야 한다. 또한 방역 기관의 허가 없이 가축의 분뇨를 야외에 살포하거나 농장 밖으로 반출하는 행위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일반 축산 농가에서도 AI 바이러스 발생 지역 방문을 금지해야 한다. 농장에 출입하는 모든 사람과 차량 등에 대해 철저한 통제 및 소독 역시 필요하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축사 내외부를 세척·소독하고 의심 증상이 관찰될 경우 즉시 방역 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시인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에서 일제에 빼앗긴 우리 국토를 바라보며 비탄과 허무를 드러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국토를 빼앗겼다 하더라도 ‘민족의 혼’만큼은 반드시 빼앗길 수 없다는 강한 저항 의식을 표현했다. 필자도 언젠가는 우리 축산농가가 AI 바이러스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날이 반드시 올 거라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그 해방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각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컨트롤 타워로서 신속하게 대응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농가는 이행 사항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그리고 효과적으로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민관이 서로 신뢰하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