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느끼게 하는 찬바람이 불던 지난 22일, 무안 남악신도시에 있는 전남경찰청에서 뜻깊은 행사가 펼쳐졌다. ‘2017년 올해의 경찰 영웅 고(故) 안병하 경무관 추모 흉상 제막식’이다.

그는 1979년 2월 전남도 경찰국장으로 부임하여 5·18의 격랑 속에서 80년 5월 26일 직위 해제를 당하고 병마에 시달리다 88년 10월 순직하신 분이다.

순직 직전 광주일보가 발행하는 월간지 ‘예향’ 9월호에 최초의 인터뷰가 실렸다. 대담자는 당시 광주일보 나의갑 기자, 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당시 공수부대가 너무 가혹하게 진압했어요. 그래서 우리 작전과장이 공수단 장교에게 항의하지 않았어요?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지다가 젊은 장교한테 발길질을 당하고 나중에 문책까지 당해 그만뒀어요.” 5·18 당시 경찰 간부들이 ”시민 여러분 빨리 집으로 돌아가시오. 군인들한테 잡히면 죽소!“ 울면서 하소연했다는 시민들의 증언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5·18은 지금은 국가에 의해 ‘민주화운동’으로 명명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킨 거룩한 운동이라는 의미이다. 5·18은 정치적으로는 민주화운동일지 모르나 당시 광주 시민들에게는 생존 투쟁이었다. 신군부는 인간의 본능을 짓밟았고, 광주 시민들은 ‘생존’을 위해 싸웠다. 경찰들도 이런 정황을 알고 있었다. 경찰이야말로 야만의 현장을 지켜본 생생한 목격자이다.

안병하,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 6·25 전쟁에 참전하여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육사 8기 군 출신이다. 당연히 안정·질서·안보로 귀결되는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합리와 상식’이라는 인간 보편의 품성이 있었다. 안병하 국장은 ‘5·18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자기네들 희생물이었단 얘기입니다. 자기네들 정권 잡기 위해서 광주사태 만들어 놓고 책임을 나에게 맡겨 버린 것 아닙니까.” 자기네들은 과연 누구인가?

전두환 회고록에는 안병하 당시 도경국장이 근무지를 이탈하고 직무를 유기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신군부의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시민을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한 죄로 80년 5월 26일 직위 해제되어 보안대로 끌려갔다. 그런 그가 2003년 4월, 광주 민주유공자가 되고 2017년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선정되었다. 5·18에 대한 신군부의 왜곡 하나가 명백히 밝혀진 것이다.

흉상 제막식에서 그의 아드님이 말한 것처럼 오늘은 안병하 국장이 흉상으로 예전 직장에 복귀한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날이다. 신군부는 그를 강제 퇴출시켰지만 역사는 그를 되살려냈고, 국민은 그를 기억하고 기념할 것이다. 그의 흉상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다. “당신은 경찰 정신을 지켜낸 인권 경찰의 표상입니다.”

어제 속에 내일이 있다. 역사에서 정의를 배워야 한다. 역사의 법정은 더디게 진행되지만 현실의 법정보다 냉철하다. 마치 세파에 무뎌진 영혼을 일깨우는 칼바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