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밭을 열심히 일궈 얻은 수확량의 절반을 농부의 동의나 협의도 없이 국가가 일방적으로 빼앗아 벌이가 시원찮은 옆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면 동의할 국민이 있을까?

30만 여수시민들이 내린 결론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방정부간 재정격차 해소와 지방재정 건전화는 부자인 중앙정부의 곳간에 쌓여 있는 곡식을 좀 더 가난한 지방정부에 나눠주면 쉽게 끝나는 문제다.

지난달 22일 정부가 ‘2016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 2018년부터 법인지방소득세의 50%를 공동세로 전환해 재정여력이 약한 인근 기초단체에 배분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중앙정부 곳간의 곡식은 나눠 줄 생각도 않은 채, 땀 흘려 기업을 유치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파괴 및 생활의 불편을 감내하고 있는 지방정부의 곳간을 강압적으로 빼앗겠다는 속내로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입안하면서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와 어떠한 의견 교환이나 협의도 없었다. 이번 발표 이후 지난 한 달 동안 전국의 대부분 지자체는 각각 찬성과 반대 입장을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발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앙-지방, 지방-지방간 화합보다는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있어 단체장의 한 사람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논란이 되는 법인지방소득세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내용이지만 우리 여수시 같은 산업도시에서는 매우 중요한 자치 재원이다. 법인세 과세표준에 지방세율(1.1∼2.2%)를 적용해 해당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징수하는 독립세이기 때문이다.

재정자립도가 25%인 우리 여수시가 지난 4월말 징수한 법인지방소득세는 778억 원이었다. 이는 여수시의 1년 지방세입 40%에 해당하는 비중이 매우 큰 재원이다. 그런데 이 법인지방소득세의 50%를 정부가 공동세로 전환해 재정여력이 약한 인근 기초자치단체에 배분한다는 것이다.

올해 여수시가 징수한 778억 원 중 50%인 389억 원을 전남도와 도내 시·군과 나눈다는 것에 동의할 시민들은 아무도 없다.

여수시의회도 지난 20일 폐회한 제168회 여수시의회 임시회에서 ‘법인지방소득세의 도세(공동세) 전환방침 철회 촉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동안 우리 여수시와 같은 일선 지자체는 법인지방소득세의 징수를 높이기 위해 각종 투자유치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민선6기 우리 시도 57건에 4조7271억 원의 기업 투자를 유치했다.

기업 투자유치는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효과를 얻기 위한 목적이 우선이지만 세금징수를 통한 지자체의 재원확충이라는 또 다른 목적도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여수시민들은 석유화학국가산단이 입지해 있어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생하는 각종 사고 등에 의한 피해를 40여 년 전부터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때문에 여수시민들은 법인지방세를 이런 피해에 대한 대가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다.

산단에서 거두어 들인 매년 5조원의 국세 일부를 지방세로 전환해 주지는 못할망정 지방정부가 징수한 법인지방세의 절반을 다른 목적으로 국가가 빼앗아 간다는 것에 대해 여수 시민들이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 시와 같이 법인지방소득세의 지방재원 비중이 높은 시군의 일방적 희생을 전제로 한 이번 개편내용에 심각한 우려와 함께 철회를 강력 요청한다.

정부는 세제개편에 앞서 자치단체 간 지방재정 격차 해소 및 건전화 방안을 위해 국세의 일부를 지방세로 전환하는 등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조정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현재 80:20 수준인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지방자치 시대에 걸맞게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방안이다.

여수시는 자치재정의 강화를 염원하는 지방의 다른 자치단체들과 함께 정부의 일방적인 ‘지방재정제도 개편(안)’이 철회될 때까지 공동으로 저지운동을 펼칠 것이다.

또한 국가산업단지가 인접한 전국의 모든 지자체와 연대해 국가산단에서 나온 국세 일부를 지자체의 재정으로 전환토록 하는 운동도 이번 논란을 계기로 더욱 적극적으로 펼쳐나갈 것이다.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을 하향평준화하기에 앞서 국세의 지방세 전환을 통해 헌법에 보장된 지방자치 이념을 실현하는데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