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기이한 단어들이 등장했다. 헬조선, 수저계급론, n포 세대. 한국을 살 곳이 못 된다는 의미로 지옥에 비유하고, 넘어설 수 없는 계급제가 존재하는 사회라 비꼬며, 기본적인 삶의 요소조차 포기해야 하는 사회로 묘사하는 단어들이다. 뜻하는 바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한민국의 부조리한 사회상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을 함축해 놓은 것들이다.

어느 시대에나 사회에 대한 불만은 늘 존재했고, 그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도 존재했다. 하지만 근래 등장한 저 단어들은 과거의 것과는 성질이 다르다. 과거에 존재했던 불만은 그 기반에 어디까지나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면, 앞서 언급된 말들의 기반에는 개선의지가 아닌 ‘포기’가 있다.

통신이 발달한 덕에 공감을 얻은 의견은 순식간에 사회 전반으로 번진다. 인터넷이 일상이 된 젊은 세대에게서 그 속도는 더욱 빠르다. 때문에 이 ‘포기의 사고’가 젊은 세대의 특성을 구성하는 공통된 의식으로 뿌리내리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인터넷 댓글이나, SNS에서는 포기의 사고가 자기 비하로 나타난다. 정부의 부정이나 비리, 무능이 보도되면 분노하는 게 아니라, ‘이래야 헬조선이지.’ 내지는 ‘저게 한국 국민의 종족 특성이다’ 라고 반응하는 식이다. 반복되기만 하는 똑같은 부조리를 보면서 결국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는 인식이 학습되어 버린 것일까. 마치 회사에서 수없이 기회를 주었으나 발전 의지도 가망도 없는 직원을 바라보는 듯한 싸늘함이 느껴지는 반응이다.

‘이민계’(契)라는 것이 있다. 이민을 가기 위해 계를 조직해 돈을 모으고 정보를 공유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1년 전쯤 기사화되어 구체적인 존재가 알려졌고 얼마 전 다시 기사화되었다. 이제는 이들을 위한 북유럽 정착 가이드북까지 출간되었다고 하니 울어야할지 웃어야할지 모르겠다.

기사에 따르면, 이들은 금융, 전자, 해운 산업 등의 대기업 직원들로, 국내 임금근로자 중 상위층에 속한다. 그럼에도 국내에서의 삶에 불만을 느끼고 유럽 선진국으로 이민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해외 유수의 대학 학위 소지자, 국내 명문 대학 졸업자, 국내 대기업 종사자들 중에도 해외 취업 이민을 위해 용접, 자동차 정비 등의 기술과 이민 희망 국가의 언어를 익히며 체계적인 이민 준비를 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과거 해외 취업 이민의 이유는 국내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거나, 더 높은 임금을 위해서였다. 살기 위해서 혹은 꿈을 위해서 한국을 떠났다. 하지만 이민계를 조직한 이들의 속내는 그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미 국내에서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있어 상당한 성취를 이뤘지만 긴 노동시간, 과도한 경쟁,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사회, 정치, 문화 전반의 문제점에 대한 회의가 이민을 결정하게 만든 주요인이다. 그들의 이민은 ‘더 나은 것의 추구’가 아니라, ‘한국 탈출’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

국내의 유능한 인재가 해외 시장에 진출해 한국의 인지도를 높이고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다면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환멸을 한국을 떠나려는 동기로 공유하는 공동체가 있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미래를 이끌 젊은 세대 즉, 미래세대에게 번진 포기의 사고가 한국을 버리려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평탄치 못했던 역사 속에서도 한국을 지금까지 한국으로 남아 있게 만든 힘은 무엇이었을까. 경제력, 군사력, 정치외교력. 이 중에는 납득할 만한 것이 없다. 절대로 나라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이 땅의 국민이 원천적인 힘이라는 주장에 보다 믿음이 간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세대가 대한민국을 포기하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어떻게 다시 마음을 돌릴 것인가.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나라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미래세대의 숙명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지금 권력을 손에 쥐고 국가와 사회를 경영하고 있는 세대에게 문제 해결에 대한 우선적인 책임이 있다.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근본적이고 올바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 노력을 외치고, 취업한다고 돈을 주고, 중동 취업을 알선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