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저에게 애니메이션을 배우는 이들은 이 관객 앞에, 이 극장에 한번 앉아 보기를 정말로 소원하게되었습니다. 제가 이 극장에 처음 앉았을 때 창작자로서 내가 정말 사랑받고 있구나라는 것을 이 의자들이 모두 말해주더군요.”

영화관에 놓인 붉은 색 낡은 의자, 소박한 출입문, 단정하게 개켜진 담요 앞을 서성이는 관객의 모습…. 이어지는 안재훈 감독의 코멘트는 인상적이었다. 세상에 이처럼 멋진 찬사를 받는 극장과 관객들이 있을까.

광주극장 80년 역사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필름 에이지 윤수안 감독의 다큐 한대목은 광주극장이 갖고 있는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935년 10월 1일 문을 연 광주극장은 오랜 세월 동안 광주 문화 활동의 본거지였다. 영화 상영은 물론이고, 김구 선생의 시국 강연회, 국극단과 창극단의 공연, 연극·무용발표회, 유명 가수 리사이틀, 권투 시합까지 시민들에게 온갖 즐거움을 전한 문화 용광로였다.

올해 80주년을 맞는 광주극장은 단순히 오래된 추억과 기억만을 반추하는 공간을 넘어선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고 여전히 피가 돌고, 심장이 뛰고 온기가 느껴지는 ‘진행형’의 공간이다.

새해, 광주극장에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의 발길이 이어졌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감독인 대만의 차이밍량 감독과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자인 태국의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감독이다. 두 사람은 시간의 무게를 고스란히 견뎌낸 광주극장에 무한한 애정을 보였다. 차이밍량 감독은 오는 9월 개관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 개관 프로그램을 광주극장에서도 진행한다. 아피찻퐁 감독은 영화관 구석구석을 카메라에 담았고, 자신의 트위터에 극장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시민 1000여명과 함께 영화를 관람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진모영 감독과 한경수 PD는 ‘광주극장, 고맙습니다’라는 사인을 남겼다.

멀티플렉스의 홍수 속에서 광주극장이 전국 유일의 단관극장으로 건재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영화 프로그램의 힘이 크다. CGV 터미널에 무비 꼴라쥬가 생기기 전에는 예술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일반 개봉작 뿐 아니라 다양한 영화제 역시 광주극장의 자랑이다. 지금까지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제, 왕가위 영화제, 쿠바 영화제 등 수많은 영화제를 열었고 광주시네마테크와‘광주시네마테크와 함께 하는 명화 읽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올해도 ‘2014 다시 보는 한국영화’, ‘프랑스 고전영화특별전’을 계획중이다. 또 광주극장의 최전성기였던 1960년대 화제작과 함께 ‘저 하늘에 슬픔이’ 등 한국영상자료영상원이 디지털로 복원중인 1960∼70년대 흥행작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획전도 준비하고 있다.

영화 관련 소모임도 인기다. 한 감독의 영화를 집중상영하는 ‘수요영화클럽’은 128회를 넘어섰고, 고전 작품 위주로 감상하는 ‘토요영화클럽’ 역시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전시, 콘서트 등 문화 전반으로 외연을 확장중이다. 광주프랑스문화원과 함께하는 ‘음악으로 통(通)하다’는 대표 프로그램이며 광주비엔날레 전시장 역할도 했다. 또 자발적으로 전시를 청하는 이들도 많다. ‘관객과의 대화’도 자랑거리다. 멀티플렉스의 형식적인 행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극장을 찾은 관객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술 한잔도 나눈다.

1년이면 130∼150여편을 상영하는 광주극장의 평균 관객은 2만5000명 수준이다. ‘워낭소리’가 대박을 터트렸던 2009년 단 한차례 3만명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3만 3426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광주극장은 2002년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전용관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매해 지원을 받고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매년 평가에서 상위권을 차지, 지난해에는 인센티브를 포함, 6500만원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올해는 영진위가 극장 상영작을 아예 선정하는 등 극장의 자율성을 보장하지 않는 쪽으로 지원책을 마련하는 데 항의, 전국의 예술영화전용관들이 지원 보이콧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어려운 한해가 예상된다.

광주극장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덕에 1960∼80년대 영화·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차태현 주연의‘헬로우 고스트’에서는 1970년대 풍경을 재현했고 타임워프를 소재로한 작품으로 2014년 최고 작품 중 하나였던 드라마 ‘나인’, 이종석 박보영 주연의 ‘피끓는 청춘’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에는 곽경택 감독이 김윤석·유해진과 함께 신작을 촬영했다.

몇년 전 세계 예술영화관을 순회하며 관련 글을 기고하는 프랑스인 완다 스크롤리안씨가 광주극장을 찾았다. 그녀는 “영혼이 따뜻한 극장”이라고 광주극장을 평했다. 무엇보다 관객과의 관계가 매우 돈독한 극장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광주극장의 큰 힘은 바로 ‘관객’이다.

광주극장은 불편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삐그덕대는 의자는 깔끔함과는 거리가 멀다. 마땅한 휴게 공간도 없고, 불펴한 화장실, 겨울의 추위까지. 그럼에도, 광주극장을 한번이라도 찾았던 이들은 다시 극장 문을 두드린다.

“광주극장이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같은 공기를 가지고 추억을 갈망하는 이들을 보듬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7년동안 그대로 인듯 또 달라졌네요.”

상영관 입구 벽면을 빼곡히 채운 관객들의 글 속에는 광주극장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이 가득 담겼다.

광주극장 김형수 이사는 “80년 동안 광주극장의 필름이 돌아갈 수 있었던 건 저희보다 더 극장을 아끼고 사랑해준 관객 덕분”이라고 말했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