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던 사촌 오빠 집 책장에는 책들이 빼곡했다. 그 중에서도 삼중당 문고는 작품 목록도 목록이지만 다양한 그림의 표지가 참 좋았다.

문고본에 얽힌 추억은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다. 300만 부 가까이 팔린 범우에세이 문고의 법정 스님 작 ‘무소유’는 한 권쯤 갖고 있을 듯. 여학생들에게는 책 사이에 끼워두고 보던 하이틴 로맨스가 단연 인기였다. 100% 예측가능한 스토리와 몇권 읽다보면 한 권 정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던 자기 복제가 특징이었지만 새 책이 나올 때마다 돌려 읽느라 바빴다.

우리나라 문고본의 시초는 1909년 최남선이 10전 균일가로 발간한 십전총서로 알려져 있다. 해방 후에는 을유문고, 정음문고 등이 발간됐고 1970년대는 문고본의 황금기였다. 1972년 ‘그리스 로마신화’를 첫권으로 발간한 문예문고, 1975년 100권을 동시에 200원대에 내놓았던 삼중당문고 등이 대표적이다.

외국 문고본의 역사는 유구하다. “이제는 지식과 미를 특권계급의 독점에서 빼앗아 돌려주는 것이 언제나 진취적인 민중의 절실한 요구다.” 일본 이와나미문고의 창간사다. 1927년 시작된 이와나미문고는 5000종 넘게 발간되고 있다.

끄세즈문고는 1941년 창간된 프랑스의 문고본이다.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말, ‘끄세즈(Que sais-je·나는 무엇을 아는가)’에서 따온 시리즈로 4000여 종 이상 발간됐다. 작가 토머스 만이 “레클람문고의 영향을 받지 않은 독일인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싶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독일 레클람 문고 역시 1867년 창간 후 여전히 진행형이다.

살림출판사가 펴낸 ‘살림지식총서’가 11년만에 국내 문고본 중 처음으로 500권을 돌파했다. 문사철을 비롯해 정치·사회·취미·실용·과학 등 온갖 주제를 다루는 시리즈로 가로 12㎝, 세로 19㎝ 크기에 가격은 3300원(지난해부터 4800원으로 인상), 커피 한 잔 값이다.

문고본의 즐거움 중 하나는 책 날개에 적힌 제목을 보고 구입 목록을 체크하는 것. ‘포켓몬스터’부터 ‘자크 라캉’까지, ‘축구의 문화사’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의 성찰’까지 ‘세상의 모든 지식’이 담긴 ‘작은 책’을 기억하시라.

/김미은 문화1부장 me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