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날씨 어떤가요? 배가 뜰 수 있나요?”

광주지법 파산 48단독 한지형 판사는 4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목포항에 전화를 걸어 기상 상황부터 확인했다. 신안군 안좌도를 직접 찾아가 재판을 하기로 된 날이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날 오후 2시 안좌면사무소에서 채권자 집회 6건, 선고 9건 등 15건의 개인 파산 사건 재판을 진행했다.

파산 신청인 대부분은 태풍으로 양식장 피해를 보거나 특용작물 등 농업에 종사하다가 빚을 지게 된 농어민이었다.

흑산·도초·우이·비금도 등 인근 섬 지역에서 파산을 신청한 이들은 기존에는 광주지법 본원에 출석해야 했던 불편을 판사의 방문으로 덜 수 있었다.

‘현장 법정’인 만큼 재판에서는 신안군청 행정지원과장의 지역 산업 현황 설명이나 파산 관재인의 면담도 충실하게 이뤄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뱃시간을 고려해 재판 순서를 정하는 배려도 있었다.

광주지법은 다음달부터 도서 지역 주민 등을 대상으로 개인파산 사건 심리를 당사자가 사는 곳 주변에서 진행하는 이른바 ‘삶터 법정’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다.

지난달 28일 해남지원에서 시범적으로 첫 시행한 뒤 두 번째로 안좌도를 찾았다.

지난해 11월 서울고법 재판부가 관할 법원이 아닌 고흥군 법원에서 사상 처음으로 변론기일을 진행했지만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법정’을 열기로 한 것은 광주지법이 처음이다.

비금도에 사는 김모(69)씨는 “아침 일찍 첫 배로 목포를 거쳐 길도 잘 모르는 광주 법원까지 가려니 막막했는데 판사가 찾아와서 편리했다”며 “재판 시간을 맞추기도 쉽고 무엇보다 뱃시간 때문에 광주나 목포에서 하루를 묵는 일도 없어 좋다”고 말했다.

/신안=이상선기자 s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