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무주] 개똥벌레 헤는 초여름밤의 낭만
2009년 06월 18일(목) 00:00 가가
내 이름은 반딧불이. 개똥벌레라고도 한다.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다시 성충이 되기까지 무려 300일 이상 걸리지만 정작 바깥세상 구경은 2주 정도가 전부다. 딱 이맘때다. 6월이 되면 나와 친구들은 성충이 되어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2주밖에 살지 못한다고해서 동정은 금물. 짧지만 아름답게 살다가니 그걸로 족하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이슬’만 먹고 산다. 그러다보니 주거환경도 중요하다. 청정 환경이 아니면 살지 않는다. 우리들이 전북 무주 일대에 모여 사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 무주 구천동
무주하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구천동(九千洞).
저어기 덕유산 정상 부근에서 내려와 설천면 소천리에 있는 나제통문(羅濟通門)까지 이어지는 계곡은 그 전체 길이가 25km에 이른다. 이 길고 긴 계곡을 33개의 절경으로 나눠 각각의 이름을 붙였다. 그 이름을 유념해 계곡을 감상한다면 그 재미가 배가 될 듯. 하나만 예를 들어볼까? 33경 중 하나인 ‘파회(波淮)’는 ‘맑은 물이 바위에 부딪혀 담연을 이룬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우선 파회·수심대 일원과 일사대 일원으로 향한다. 번데기 시절에 들은 바로는 최근 이 두 지역이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 예고됐다고 해서다. 얼마나 좋길래…, 성충이 되면 꼭 한 번 구경하고 싶었다.
파회·수성대 일대에서 복병을 만났다. 다름 아닌 ‘접근금지’ 푯말이다. 익사 위험이 있다나? 나야 허공을 날아가면 그만이겠지만 인간들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겠다. 멀리서 봐도 그 계곡의 형세가 예사롭지 않다. 날갯짓은 버겁지만 눈은 호강한다.
다음은 일사대. 수성대라고도 한다. 물길이 둥글게 퍼지며 머무는 듯 하더니 다시금 좁아지며 거품을 일으킨다. 물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니 나제통문이 보인다. 구천동의 마지막 지점이다. 물길의 입장에서 보자면야 마지막 지점이지만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구천동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나제통문은 낮은 돌 언덕 아래를 높이 5∼6m, 너비 4∼5m, 길이 30∼40m의 크기로 뚫어놓은 일종의 터널로, 옛 신라와 백제의 경계관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옛 백제 땅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통문을 지나 신라의 후예로 보이는 길손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걷어간다.
최근 이 굴이 삼국시대 때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 뚫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논란이 일고 있다는데, 어떤 것이 진실인지 모를 일이다.
이 모든 곳이 37번 국도변으로 이어져 있으니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겠다.
◇ 적상산 안국사
‘붉은 색 바위지대가 마치 산이 붉은 치마를 입은 듯하다’하여 이름 지어진 적상산(赤裳山)은 덕유산 국립공원 내에 속하면서도 덕유산과는 또 다른 명산. 그리고 해발 1,000m를 웃도는 정상 그 언저리에 자리 잡은 안국사(安國寺)는 말 그대로 고즈넉한 산사다.
안국사는 길이가 10m가 넘는 크기의 괘불인 영산회괘불탱(보물 제1267호)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관리상의 문제로 괘불을 직접 구경하는 것은 무리. 여기까지 올라와 보관상자만 바라봐야 하는 객들의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그 옆으로 그림을 사진으로 축소해 옮겨 놓은 액자가 걸려있다.
안국사에서 내려다 본 적상산의 산세는 그걸 충분히 메울 수 있을 만큼 절경이다. 녹음이 우거진 까닭에 이름대로의 붉은 치마를 연상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6월의 짙푸른 그 녹음만으로도 모자람이 없다. 인근 전망대에 서면 덕유산의 향적봉이 구름에 걸려 속세와는 전혀 동떨어진 곳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케이블카 한 번으로 누구나 손쉽게 올라갈 수 있는 곳인데도 말이다.
◇ 반디랜드
높은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더니 날갯죽지가 뻐근한 것이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새삼 부러워졌다. 그래도 조금 더 힘을 내어 본다.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나의 ‘홈그라운드’인 반디랜드가 있다.
설천면 청량리에 위치한 반디랜드는 곤충박물관과 반딧불이 자연학교, 반디별천문과학관, 청소년 야영장 등으로 이뤄진 복합 생태체험·학습·교육 공간. 곤충박물관에는 반딧불이를 비롯해 2천여 종의 전 세계 희귀곤충 표본과 200여종의 열대식물을 만날 수 있다. 그외 반디별천문과학관에선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별들도 감상할 수 있다.
/글=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사진=강원태 기자 wkang@busan.com
2주밖에 살지 못한다고해서 동정은 금물. 짧지만 아름답게 살다가니 그걸로 족하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이슬’만 먹고 산다. 그러다보니 주거환경도 중요하다. 청정 환경이 아니면 살지 않는다. 우리들이 전북 무주 일대에 모여 사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무주하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구천동(九千洞).
저어기 덕유산 정상 부근에서 내려와 설천면 소천리에 있는 나제통문(羅濟通門)까지 이어지는 계곡은 그 전체 길이가 25km에 이른다. 이 길고 긴 계곡을 33개의 절경으로 나눠 각각의 이름을 붙였다. 그 이름을 유념해 계곡을 감상한다면 그 재미가 배가 될 듯. 하나만 예를 들어볼까? 33경 중 하나인 ‘파회(波淮)’는 ‘맑은 물이 바위에 부딪혀 담연을 이룬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우선 파회·수심대 일원과 일사대 일원으로 향한다. 번데기 시절에 들은 바로는 최근 이 두 지역이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 예고됐다고 해서다. 얼마나 좋길래…, 성충이 되면 꼭 한 번 구경하고 싶었다.
나제통문은 낮은 돌 언덕 아래를 높이 5∼6m, 너비 4∼5m, 길이 30∼40m의 크기로 뚫어놓은 일종의 터널로, 옛 신라와 백제의 경계관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옛 백제 땅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통문을 지나 신라의 후예로 보이는 길손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걷어간다.
최근 이 굴이 삼국시대 때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 뚫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논란이 일고 있다는데, 어떤 것이 진실인지 모를 일이다.
이 모든 곳이 37번 국도변으로 이어져 있으니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겠다.
◇ 적상산 안국사
‘붉은 색 바위지대가 마치 산이 붉은 치마를 입은 듯하다’하여 이름 지어진 적상산(赤裳山)은 덕유산 국립공원 내에 속하면서도 덕유산과는 또 다른 명산. 그리고 해발 1,000m를 웃도는 정상 그 언저리에 자리 잡은 안국사(安國寺)는 말 그대로 고즈넉한 산사다.
안국사는 길이가 10m가 넘는 크기의 괘불인 영산회괘불탱(보물 제1267호)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관리상의 문제로 괘불을 직접 구경하는 것은 무리. 여기까지 올라와 보관상자만 바라봐야 하는 객들의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그 옆으로 그림을 사진으로 축소해 옮겨 놓은 액자가 걸려있다.
안국사에서 내려다 본 적상산의 산세는 그걸 충분히 메울 수 있을 만큼 절경이다. 녹음이 우거진 까닭에 이름대로의 붉은 치마를 연상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6월의 짙푸른 그 녹음만으로도 모자람이 없다. 인근 전망대에 서면 덕유산의 향적봉이 구름에 걸려 속세와는 전혀 동떨어진 곳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케이블카 한 번으로 누구나 손쉽게 올라갈 수 있는 곳인데도 말이다.
◇ 반디랜드
높은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더니 날갯죽지가 뻐근한 것이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새삼 부러워졌다. 그래도 조금 더 힘을 내어 본다.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나의 ‘홈그라운드’인 반디랜드가 있다.
설천면 청량리에 위치한 반디랜드는 곤충박물관과 반딧불이 자연학교, 반디별천문과학관, 청소년 야영장 등으로 이뤄진 복합 생태체험·학습·교육 공간. 곤충박물관에는 반딧불이를 비롯해 2천여 종의 전 세계 희귀곤충 표본과 200여종의 열대식물을 만날 수 있다. 그외 반디별천문과학관에선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별들도 감상할 수 있다.
/글=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사진=강원태 기자 wkang@bus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