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에 가서 글자랑 하지 마라’
“옛날에는 신흥리가 가난하기로 유명허요. ‘신흥리 큰애기 쌀 서 말 못 먹고 시집간다’고 그랬지라.”
청산도 읍리 노인회장 양금수(76)씨는 척박했던 섬 생활에 대해 얘기한다. 섬이지만 바다보다 논과 밭에 기대 살았다. 가파른 산자락을 일궈 농사지을 땅을 만들었지만 돌이 많은 섬은 물가두기가 쉽지 않았다.
그 방편으로 이용했던 것이 또 돌이다. 넓적한 돌을 논바닥에 깔았다. 흙은 기름지지 못 했고 해마다 많은 양의 퇴비를 만들어 땅심을 북돋는 수고를 해야 했다. 이것이 청산도의 ‘구들장논’이다. 구들장 같은 돌을 깔고 그 위에 다시 흙은 덮어 만든 논.
산을 깎아도 농사지을 땅은 모자라기만 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뭍에 살던 처녀가 청산도로 시집을 갔다. 시어머니가 “오늘은 12개의 밭을 매라”고 시켰다. 종일 밭을 맨 새색시는 저녁 무렵 허리를 펴고 일한 밭을 세어보니 아무리 봐도 11개 밖에 안 되었다. 설움에 북받쳐 울다 자리를 털고 일어섰는데, 바로 그곳이 12번째 밭이었다.
척박한 땅에서 나오는 쌀은 부족하기만 했다. 그래서 ‘청산도 큰애기 시집갈 때까지 쌀 서말 먹기 힘들다’는 말이 있었고 이곳에서 자란 처녀가 뭍으로 시집갈 때까지 쌀 세말만 먹으면 ‘부잣집 큰애기’라는 소리를 들었다. 고단한 살림을 꾸려가야 했기에 ‘속 모르면 청산도로 시집가지 마라’는 말도 있었다.
폭폭한 삶을 힘들게 이어가야 했던 청산도 사람들, 하지만 청산도에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말 가운데 ‘청산도 가서 글자랑 하지 마라’는 말도 있다. ‘똥장군 지고도 한시를 읊던 게 청산 사람들’이라 했다.
청산도 부흥리에는 숭모사(崇慕祠)라는 사당이 있다. 귤은(橘隱) 김류(金瀏 ,1814∼1884) 선생을 모시는 사당으로 해마다 3월 3일이면 제를 올린다. 조선 말기 한학자 귤은 선생은 청산도와 가까운 거문도 사람으로 34세에 노사 기정진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익혀 후학 양성에 힘썼다. ‘청산도에서 글자랑 하지 마라’는 그 귤은 선생과 관계가 깊다.
“귤은 선생이 집인 거문도로 가다가 풍랑을 만났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청산도로 오게 됐는데 섬 풍광도 좋고 사람들 인심도 좋은 거야. 그래서 청산도에 서당을 지어갖고 수제자들을 키우기 시작했제. 그때부터 청산도에 한학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예의를 중시 여기게 됐제.”
양금수씨의 말과 다르게 지승문이라는 사람이 귤은 선생의 명성을 듣고 거문도에서 직접 선생을 모셔왔다는 얘기도 있다.
청산도 교육열을 나타내는 말로 ‘청산도 사람들은 친척 버선까지 팔아서 자식 가르친다’는 말이 있다. 일찍이 학문의 열기가 자리 잡은 섬에는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했고 그 결과 여느 섬보다 사회 진출에 성공한 이들이 많았다.
청산도 사람들의 사회 진출이 왕성했던 것은 향상된 경제력에 덕분도 있다. 지금은 완도행 선착장일 뿐인 도청항은 1960년대 파시가 섰던 남해 어업 중심지였다. 고등어, 아지 등 만선을 이룬 고깃배들이 선창을 가득 채웠다. 파시는 주민들의 살림을 넉넉하게 했고 뭍으로 자식들을 유학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양금수씨는 “청산도에는 효열비가 많다. 땅이 척박해도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자식을 가르치려는 의지가 청산도 사람들에게 있었다. 그 뒷 배경에는 귤은 선생의 영향으로 유학을 숭상하고 배움을 중시했기 때문이다”라며 말을 맺었다. /글·사진=김창헌(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