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과 독일의 전 연방총리 빌리 브란트. 역경을 이겨내고 세계적 지도자로 성장, 조국 통일을 주도했던 이들의 삶은 놀라우리만치 닮아 있었다.

독일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30년 넘게 독일 현대사와 독일 통일 연구를 해 온 최영태 전남대 명예교수가 최근 ‘빌리 브란트와 김대중’(성균관대학교출판부)을 출간했다. 정치 지도자로서 김대중과 브란트의 인생과 정책, 분단된 조국을 위한 통일 정책을 비교·분석한 책이다.

최 교수는 독일이 통일을 이룩한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순간 현장에 있었다. 최 교수는 “독일에서의 경험이 통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독일 현대사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평화 운동을 연구하다 두 사람의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이들의 인생은 ‘데칼코마니’에 비유될 만큼 유사점이 많다.

사생아였던 브란트와 서자였던 김대중은 출생부터 비슷했다. 브란트는 어머니로부터 단 한 차례 아버지의 이름을 들은 것 외에는 이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브란트의 복잡한 가족사는 정적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고, 정치 생활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김대중은 자서전에서 “아버지는 부인이 두 사람이었고, 내 어머니는 둘째 부인이었다”고 말했다. 김대중 또한 정적들이 쏟아내는 출생에 관한 루머에 시달렸지만, 생전에 이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살아온 인생도 유사했다. 브란트는 서독의 변방이었던 서베를린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며, 김대중도 한국의 정치적 변방인 호남에서 정치에 입문했다. 두 사람 모두 오랜 시간 야당 대표를 지냈으며, 개혁·진보적인 정치 성향으로 공격받았다.

또한 브란트는 14년 동안 망명 생활을 했으며, 김대중도 투옥·연금, 사형선고 등 시련을 겪었다. 브란트는 세 번, 김대중은 네 번의 도전 끝에 정상에 올랐다. 각자 국가에서 최초로 대학 졸업장 없이 최고 지도자에 올랐으며, 독서광이자 역사 분야에 관심이 깊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정치적 방향성과 정치철학도 공통점이 많았으며, 통일 정책도 궤를 같이 했다. 브란트는 중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과 화해하며 통일의 문을 연 ‘동방정책’을 펼쳤다. 이는 남북한 사이 긴장을 완화하고 외교적 지평을 넓히고자 했던 김대중의 ‘햇볕정책’과 닮아 있다. 이들은 당시 사고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화해 정책으로 반대파의 거센 공세를 감당해야 했다.

한편 최 교수는 두 사람의 차이점에도 주목했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통일’보다는 평화 구현과 민족의 동질성 유지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김대중의 햇볕정책은 1300여년을 이어 온 한 민족이 타의에 의해 갈라졌음을 강조하며 틈틈이 통일 문제를 화두에 올렸다.

결과도 달랐다. 동방정책은 후임자인 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 등 총리를 통해 동서독 교류와 동질성 회복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반면 햇볕정책은 다음 정권에서 이어지지 못했다. 그 결과 독일은 1990년 통일을 이뤘지만, 한국의 남북관계는 지금도 난항을 겪고 있다.

최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독일 통일 과정에 대한 교훈을 얻고, 평화와 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길 바란다”며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민주 평화를 위해 노력한 위대한 사상가 김 대통령의 삶을 배울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