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화가와 자연 하나된 실경(實景)의 나라”
2024년 09월 23일(월) 22:00 가가
예향초대석-‘옛 그림으로 본 조선’ 연작 5권 펴낸 미술사학자 최열
문인·무명 지역 화가들의 화폭서 실경 찾아
다양한 그림으로 서사·사람향기 풀어내
그림을 먼저 본 후 글과 함께 보는 것 추천
“세상 바꾸기 위해 미술사 연구에 매진”
문인·무명 지역 화가들의 화폭서 실경 찾아
다양한 그림으로 서사·사람향기 풀어내
그림을 먼저 본 후 글과 함께 보는 것 추천
“세상 바꾸기 위해 미술사 연구에 매진”
미술사학자 최열(68)이 최근 ‘옛 그림으로 본 조선’ 연작(5권)을 마무리했다. 1970년대 학창 시절 ‘우리 그림에 실경(實景) 회화는 없다’라고 하는데 의문을 품고, 실경의 숲에서 서른 해를 보낸 저자는 ‘조선은 실경의 나라’임을 깨우쳤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독자들에게 옛 그림과 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젊은 시절 미술운동의 소명을 다한 뒤 평생 미술사학 연구의 한길을 걸어온 그는 ‘미술사 입문자를 위한 대화’(2018년)에서 “미술사 공부를 통해 나는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으나 변화를 시켰다”면서 “나의 글이, 나의 말이, 나의 몸짓이 세상을 바꾸는 일임을 단 한 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한 번뿐인 인생을 미술사에 바친 것은 가장 가치있는 일이었다고 믿고 있습니다”라고 밝힌다.
◇화폭에 담긴 조선 실경 찾아 30년 발품=“실경의 숲에서 서른 해를 보냈다. 우리에게는 실경이 없노라 배웠다.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싶어 무작정 실경을 찾아 나섰다.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동안 내가 깨우친 건 이 나라 조선은 실경의 나라요, 실경의 천국이라는 점이다.”
미술사학자 최열은 총 5권으로 구성된 ‘옛 그림으로 본 (조선)’(혜화1177 펴냄) 연작을 마치는 글에서 조선회화 실경(實景)의 숲에서 보낸 서른 해의 감회를 밝힌다. 연작은 서울 편(2020년 4월)을 시작으로 ▲제주 편(2021년 4월) ▲금강 ▲강원 ▲경기·충청·전라·경상 편(이상 2024년 5월) 순으로 출간됐다. 저자와 출판사의 손을 떠난 책은 애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5권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30여 년 동안 실경의 숲을 헤쳐온 그는 겸재(謙齋) 정선의 ‘해악전신첩’, 진재(眞宰) 김윤겸(1711~1775)의 ‘영남기행화첩’, 지우재(之又齋) 정수영(1743~1831)의 ‘해산첩’, 단원(檀園) 김홍도(1745~1805)의 ‘해산도첩’, 김남길(출신·생몰연대 미상)의 ‘탐라순력도’ 등 당대 유명 화가들의 화첩과 이름을 남기지 않은 무명(無名) 화가들의 다채로운 그림을 배관(拜觀)하며 ‘사람의 향기, 문학의 서사, 미술의 서정’을 독자들에게 아낌없이 펼쳐보였다. 옛 그림과 함께 땅의 이야기, ‘사람의 무늬’ 인문이 어우러졌다. 서울 남산 기슭에 자리한 한옥카페에서 저자를 만나 옛 그림과 미술사 이야기를 들었다.
-‘옛 그림…’ 연작을 마치며 “실경의 숲에서 서른 해를 보냈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조선 실경산수를 공부하게 됐나요?
“1970년대 중·고등학교 미술시간,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도 ‘우리 조선은 관념(觀念) 산수’라고 배웠단 말이에요. 우리는 ‘실제 경치를 그리지 않고 중국 산수를 그리는 문화적 풍토였다, 실경이 없는 나라였다’라는 거죠. 항상 머릿속에 물음표를 달고 살았어요. 제 머릿속에서 미술사의 기본 지식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으니까 의문을 가졌죠. 사실 거기서 시작이 된 겁니다.”
-‘옛 그림…’ 연작에 실린 진재 김윤겸, 지우재 정수영 등 생소한 화가들의 실경산수화가 눈에 띄였습니다. 그중 지우재의 ‘해산첩’(1799년)을 “조선에 다시 없을 걸작이자 회화사의 혁명”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18세기 유람문화를 보여주는 ‘자오’(自娛)와 와유(臥遊) 개념이 생소합니다.
“지금까지 서울, 제주, 대구에서 북 토크를 4번 했는데 독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겸재나 단원은 교과서에 나오는 분들이라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진재나 지우재처럼 처음 보는 작가의 그림들이 너무 감성에 와 닿는다는 거예요. 겸재 그림은 무겁고, 단원은 너무 섬세한데 진재는 아주 해맑고, 지우재는 거친 듯 하면서도 활기에 넘치는 아름다운 그림을 많이 남겼어요. 각각의 화가마다 개성과 특성을 갖고 있어요. 겸재와 단원 사이에 개성있는 화가들이 이렇게 풍요로운데 우리 미술사는 교과서에서 그걸 너무 단순화시켜버린 거지요. 다양성이 정말 아쉽죠. 제 책이 (조선 화가들의) 문화다양성·다채로움에 하나 기여를 했다,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18~19세기에 유람문화가 활성화되며 주문을 받지 않더라도 화가 스스로 즐기는 ‘자오’(自娛) 문화와 못가면 화가의 화첩을 구해 집안에서 보는 ‘와유’(臥遊) 문화가 섞이면서 (실경산수) 그림들이 막 쏟아져 나온 거죠.”
-‘옛 그림으로 본 제주’는 1702년 화공 김남길이 그린 41폭의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를 중심으로 쓰였습니다. 김남길과 월호(月湖) 낭심호 등 지방에서 활동한 화가나 무명 화가들 작품도 많이 실렸습니다.
“(제주 편은) 외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지인의 시선에서 쓰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제주 독자들이 다들 고맙다고 그래요. 김남길은 제주목(牧)에 소속된 군사용 지도를 그리는 제주 토박이 화가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중앙 주류 양식을 배웠으면 그렇게 못 그렸을텐데 자기 마음대로 그린 거죠. 향토양식이 갖고 있는 어설프고 세련되지 않았어도 살아 생동하는 느낌, 그런 것이 소중하죠. 이분들은 우리 미술사에서 제껴져 있어요. 작자 미상의 ‘무등산도(圖)’는 영남대박물관 소장 고지도첩에서 찾아 광주 이야기를 쓸 수 있었죠.”
◇ 젊은 날 미술운동 헌신… 이후 미술사 연구 한길=“내 공부는 ‘사사무은’(事師無隱)으로 시작한다. 사사무은은 ‘스승을 섬기는데 의문을 숨길 수 없다’라는 뜻이다. 내 이전의 모든 것이 스승 ‘사’(師)이고, 그들에게 배우는데 어찌 의문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런 태도는 ‘치의자득’(致疑自得)을 하기 위한 전제인데, 다시 말해 ‘의문을 품고 스스로 얻는다’라는 뜻이다. 바로 이 치의자득이야말로 학문의 방법론으로 황금기준이다.”
미술사학자 최열은 2021년 펴낸 ‘추사 김정희 평전’(돌베개 刊) 머리말에서 미술사 공부의 방법론으로 ‘사사무은’과 ‘치의자득’을 꼽는다.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1681~1763) 선생이 제자들에게 강조한 ‘성호학파’의 학풍이기도 하다. 또한 하나의 추사 평전을 쓴 까닭으로 “내 평생 너무 많이 쌓여서 참을 수 없을 만큼 ‘궁금한 것들’과 쏟아내고 싶은 ‘질문들’을 글로 토해 낼 뿐”이라 밝힌다. ‘옛 그림으로 본 조선’ 연작 역시 ‘조선은 관념산수 뿐이었을까?’라는 ‘궁금한 것들’과 ‘질문들’에서 비롯된 발품의 결과물, ‘조선 실경 정수(精髓)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청소년기 광주 계림동 헌책방에서 미술사학자 이동주(1917~1997) 선생의 ‘우리나라의 옛 그림’ 연재 글이 게재된 월간 잡지 ‘아세아’를 구해 탐독하고, 서울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근대미술 60년 전’을 찾으며 미술사 연구자의 꿈을 키웠다. 조선대 미대를 다닐 때 충장로 서점에서 구입한 이경성 미술평론가의 ‘근대한국미술사논고’는 청운의 꿈을 더욱 증폭시켰다. 무엇보다 ‘광주천과 무등산 그리고 5·18 민중항쟁은 나의 생애와 학문의 근간이 되어 주었다’고 말한다.
그는 남들이 가지 않은 미답(未踏)의 근·현대 미술사학을 치열하게 연구하며 ‘비평적 글쓰기’와 ‘사학적 글쓰기’에 매진해왔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좌익 활동을 했거나 월북해 한국미술사에서 지워져버린 진보적 미술인들(김복진·윤희준·김용준·고유섭·정현웅·하인두)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되살려내고, 전집을 기획·편찬했다. 루브르(고전미술관)와 오르세(근대미술관), 퐁피두(현대미술관) 등 3관(官) 체제로 운영되는 프랑스 처럼 ‘국립 근대미술관’(20세기 미술관)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붓’은 매킨토시 컴퓨터이다. 현재 한국근대미술 통사(通史)와 1980년대 민중미술을 주제로 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추사·이중섭 등 평전 형식 미술사 서술 활발=저술 목록가운데 ‘이중섭 평전’(2014년)과 ‘추사 김정희 평전’(2021년)등 평전(評傳) 형식의 미술사 서술 작업이 두드러진다. 화가들의 삶과 예술세계를 전기(傳記)나 평전 형태로 정리하는 까닭은 ‘인물미술사’를 미술사의 기본적인 접근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전 저술 원칙은 철저한 ‘술이부작’(述而不作·있는 그대로 기술할 뿐 새로 지어내지 않는다)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미술사학자 최열은 “독자가 그 책을 찾아줄 때 (저술)작업이 이어진다”면서 “결국 책은 독자의 것”이라고 말한다. 출간 후 서울과 제주 등지에서 가진 북 토크 현장에서 독자들의 열의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옛 그림으로 본 조선’ 연작 또한 그림과 글(텍스트)을 나눠서 여러 차례 볼 것을 권유한다.
“먼저 자기 직관과 안목을 일단 믿고 그냥 그림만 봐라, 독화(讀畵)라고 그래요. 그러고 나서 뭔가 궁금해지면 그때 글을 읽어라, 그렇게 하고도 궁금하면 이제 글과 그림을 같이 봐라… 이런 식의 (독서)경로를 추천하고 싶어요. 책을 다 내고 보니까 당연히 뿌듯하죠. 금강산 책 한 권에 실경산수 380점이 들어가 있어요. 19세기 이전 조선은 산수풍경을 있는 그대로 너무 사랑했던 것 같아요. 자연과 화가가 하나가 돼서 그렸습니다. 18~19세기 200년 동안 조선은 ‘화가들의 열정이 불타던 나라였다, 진짜로 실경이 아름다운 나라였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최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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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학창시절에 가졌던 실경산수에 대한 의문을 파고들어 ‘옛 그림으로 본 조선’ 연작을 펴낸 미술사학자 최열. 조선 실경산수화 자료를 모으고 글을 쓰는 노정에 서른 해를 보냈다. |
-‘옛 그림…’ 연작을 마치며 “실경의 숲에서 서른 해를 보냈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조선 실경산수를 공부하게 됐나요?
“1970년대 중·고등학교 미술시간,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도 ‘우리 조선은 관념(觀念) 산수’라고 배웠단 말이에요. 우리는 ‘실제 경치를 그리지 않고 중국 산수를 그리는 문화적 풍토였다, 실경이 없는 나라였다’라는 거죠. 항상 머릿속에 물음표를 달고 살았어요. 제 머릿속에서 미술사의 기본 지식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으니까 의문을 가졌죠. 사실 거기서 시작이 된 겁니다.”
-‘옛 그림…’ 연작에 실린 진재 김윤겸, 지우재 정수영 등 생소한 화가들의 실경산수화가 눈에 띄였습니다. 그중 지우재의 ‘해산첩’(1799년)을 “조선에 다시 없을 걸작이자 회화사의 혁명”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18세기 유람문화를 보여주는 ‘자오’(自娛)와 와유(臥遊) 개념이 생소합니다.
“지금까지 서울, 제주, 대구에서 북 토크를 4번 했는데 독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겸재나 단원은 교과서에 나오는 분들이라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진재나 지우재처럼 처음 보는 작가의 그림들이 너무 감성에 와 닿는다는 거예요. 겸재 그림은 무겁고, 단원은 너무 섬세한데 진재는 아주 해맑고, 지우재는 거친 듯 하면서도 활기에 넘치는 아름다운 그림을 많이 남겼어요. 각각의 화가마다 개성과 특성을 갖고 있어요. 겸재와 단원 사이에 개성있는 화가들이 이렇게 풍요로운데 우리 미술사는 교과서에서 그걸 너무 단순화시켜버린 거지요. 다양성이 정말 아쉽죠. 제 책이 (조선 화가들의) 문화다양성·다채로움에 하나 기여를 했다,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18~19세기에 유람문화가 활성화되며 주문을 받지 않더라도 화가 스스로 즐기는 ‘자오’(自娛) 문화와 못가면 화가의 화첩을 구해 집안에서 보는 ‘와유’(臥遊) 문화가 섞이면서 (실경산수) 그림들이 막 쏟아져 나온 거죠.”
-‘옛 그림으로 본 제주’는 1702년 화공 김남길이 그린 41폭의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를 중심으로 쓰였습니다. 김남길과 월호(月湖) 낭심호 등 지방에서 활동한 화가나 무명 화가들 작품도 많이 실렸습니다.
“(제주 편은) 외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지인의 시선에서 쓰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제주 독자들이 다들 고맙다고 그래요. 김남길은 제주목(牧)에 소속된 군사용 지도를 그리는 제주 토박이 화가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중앙 주류 양식을 배웠으면 그렇게 못 그렸을텐데 자기 마음대로 그린 거죠. 향토양식이 갖고 있는 어설프고 세련되지 않았어도 살아 생동하는 느낌, 그런 것이 소중하죠. 이분들은 우리 미술사에서 제껴져 있어요. 작자 미상의 ‘무등산도(圖)’는 영남대박물관 소장 고지도첩에서 찾아 광주 이야기를 쓸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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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문인화가 청류(淸流) 이의성(1775~1883년)의 ‘실경산수화첩’에 실린 ‘총석정’. |
미술사학자 최열은 2021년 펴낸 ‘추사 김정희 평전’(돌베개 刊) 머리말에서 미술사 공부의 방법론으로 ‘사사무은’과 ‘치의자득’을 꼽는다.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1681~1763) 선생이 제자들에게 강조한 ‘성호학파’의 학풍이기도 하다. 또한 하나의 추사 평전을 쓴 까닭으로 “내 평생 너무 많이 쌓여서 참을 수 없을 만큼 ‘궁금한 것들’과 쏟아내고 싶은 ‘질문들’을 글로 토해 낼 뿐”이라 밝힌다. ‘옛 그림으로 본 조선’ 연작 역시 ‘조선은 관념산수 뿐이었을까?’라는 ‘궁금한 것들’과 ‘질문들’에서 비롯된 발품의 결과물, ‘조선 실경 정수(精髓)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청소년기 광주 계림동 헌책방에서 미술사학자 이동주(1917~1997) 선생의 ‘우리나라의 옛 그림’ 연재 글이 게재된 월간 잡지 ‘아세아’를 구해 탐독하고, 서울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근대미술 60년 전’을 찾으며 미술사 연구자의 꿈을 키웠다. 조선대 미대를 다닐 때 충장로 서점에서 구입한 이경성 미술평론가의 ‘근대한국미술사논고’는 청운의 꿈을 더욱 증폭시켰다. 무엇보다 ‘광주천과 무등산 그리고 5·18 민중항쟁은 나의 생애와 학문의 근간이 되어 주었다’고 말한다.
그는 남들이 가지 않은 미답(未踏)의 근·현대 미술사학을 치열하게 연구하며 ‘비평적 글쓰기’와 ‘사학적 글쓰기’에 매진해왔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좌익 활동을 했거나 월북해 한국미술사에서 지워져버린 진보적 미술인들(김복진·윤희준·김용준·고유섭·정현웅·하인두)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되살려내고, 전집을 기획·편찬했다. 루브르(고전미술관)와 오르세(근대미술관), 퐁피두(현대미술관) 등 3관(官) 체제로 운영되는 프랑스 처럼 ‘국립 근대미술관’(20세기 미술관)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붓’은 매킨토시 컴퓨터이다. 현재 한국근대미술 통사(通史)와 1980년대 민중미술을 주제로 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추사·이중섭 등 평전 형식 미술사 서술 활발=저술 목록가운데 ‘이중섭 평전’(2014년)과 ‘추사 김정희 평전’(2021년)등 평전(評傳) 형식의 미술사 서술 작업이 두드러진다. 화가들의 삶과 예술세계를 전기(傳記)나 평전 형태로 정리하는 까닭은 ‘인물미술사’를 미술사의 기본적인 접근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전 저술 원칙은 철저한 ‘술이부작’(述而不作·있는 그대로 기술할 뿐 새로 지어내지 않는다)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미술사학자 최열은 “독자가 그 책을 찾아줄 때 (저술)작업이 이어진다”면서 “결국 책은 독자의 것”이라고 말한다. 출간 후 서울과 제주 등지에서 가진 북 토크 현장에서 독자들의 열의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옛 그림으로 본 조선’ 연작 또한 그림과 글(텍스트)을 나눠서 여러 차례 볼 것을 권유한다.
“먼저 자기 직관과 안목을 일단 믿고 그냥 그림만 봐라, 독화(讀畵)라고 그래요. 그러고 나서 뭔가 궁금해지면 그때 글을 읽어라, 그렇게 하고도 궁금하면 이제 글과 그림을 같이 봐라… 이런 식의 (독서)경로를 추천하고 싶어요. 책을 다 내고 보니까 당연히 뿌듯하죠. 금강산 책 한 권에 실경산수 380점이 들어가 있어요. 19세기 이전 조선은 산수풍경을 있는 그대로 너무 사랑했던 것 같아요. 자연과 화가가 하나가 돼서 그렸습니다. 18~19세기 200년 동안 조선은 ‘화가들의 열정이 불타던 나라였다, 진짜로 실경이 아름다운 나라였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최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