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예향] 마한으로 2000년 시간여행…역사 숨쉬는 땅, 나주
2025년 12월 22일(월) 20:45 가가
남도 체험로드- 나주
영산강 고분에 새겨진 선인의 기록…독널무덤서 대형 옹관고분까지
국립나주박물관·반남·복암리 고분으로 살아 숨쉬는 역사·문화 여행
영산강 고분에 새겨진 선인의 기록…독널무덤서 대형 옹관고분까지
국립나주박물관·반남·복암리 고분으로 살아 숨쉬는 역사·문화 여행
과거 ‘작은 한양’이라 불릴 만큼 주요한 행정구역이었던 나주는 삼한 시대 마한(馬韓)의 역사와 고려, 조선시대 역사를 담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나주는 지금의 광역시에 해당하는 12목 중 한 곳이었으며 고려 현종 때 8목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됐을 때도 유일한 호남 지역의 목으로 남았다. 광주와 나주를 지나 서해로 흘러드는 영산강은 우리나라 서·남부를 가로지르며 문명을 발달시켰고 주변의 넓고 비옥한 땅을 토대로 선사시대 때부터 옛 고대인들의 삶의 터전이 됐다. 나주 곳곳에서는 수백년 간 소중하게 유지해 온 다양한 모양의 무덤방들이 발견됐다. 나주 곳곳에 남겨진 선인들의 흔적을 통해 옛 고대인들의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국립나주박물관= 토기로 만든 관 ‘독널’을 만드는 데는 최소 90일 2160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항아리의 4배 크기, 최대 30배에 달하는 무게로 일반 토기를 만드는데 드는 시간, 기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독널은 고대 영산강 유역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국립나주박물관은 내년 3월 15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고대 영산강 유역 사람들의 생활양식인 독널무덤을 조명하는 ‘흙으로 만든 널, 고요한 위엄’전을 진행한다.
3세기 중엽 영산강 유역에서는 독널은 무덤의 부차적인 매장시설로 사용됐다. 그러다 4세기 무렵 무덤용으로 특화된 독널이 만들어졌고 5세기 무렵에는 U자형으로 형태도 변하고 크기도 2m에 달할만큼 규모가 커졌다. 이러한 독널 매장 풍습은 영산강 유역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으로, 이 지역이 독널을 중심으로 결속돼 왔음을 알 수 있다.
전시는 독널 생산 방식, 독특한 무덤 구조, 친족 중심의 추가장 등 독널무덤의 고유한 특징을 조명한다.
먼저 상설전시실에서는 기원전 1500~1000년경 시작된 영산강 유역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다양한 도구들을 소개한다. 전남에서 확인된 2만여개의 고인돌은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량과 밀집도를 보인다. 고인돌과 함께 묻은 껴묻거리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주 신촌리 9호분에서 발견된 국보 제295호 금동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금동관은 문화에 따라 형태가 서로 다른데 백제는 고깔형, 신라나 가야는 둥근 테를 중심으로 나뭇가지 모양 장식을 단 대관형이다. 나주 신촌리 금동관은 모관과 대관이 함께 세트를 이루는 형태로, 백제의 관들과 다른 독특한 지역양식을 띠고 있다.
독널의 곡선과 결을 더욱 가까이에서 눈에 담을 수 있는 기획전시실에서는 ‘영원한 안식, 땅에 안겨 잠들다’를 주제로 한 영상미디어가 상영된다. 높은 천장, 어두운 공간속 독널을 비추는 환한 조명 아래 서 있다보면 독널을 만들었던 고대인들의 마음과 고된 시간과 정성을 떠올려보게 된다.
박물관 1층에 있는 실감콘텐츠 체험관에서는 영산강 유역 고대 고분문화를 신기술융합콘텐츠로 구현한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총 4부로 나눠져 떠나는 이에 대한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고분 주인의 금동신발 속 수호신들의 이야기, 어둠 속 고이 잠들어있던 금동관의 발견, 태초부터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며 역사와 문화를 꽃피운 영산강의 여정을 다룬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회차별 30명씩 관람이 가능하다.
단체 관람객에 한해 특별전시에 대한 전시기획자의 깊이 있는 전시 해설도 신청 가능하다.
◇반남고분군= 고분은 삼국시대 이래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계층의 무덤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산강 유역 옛 고대 사람들은 지금으로부터 1800여년 전부터 거대한 고분을 만들기 시작했다. 국립나주 박물관에서 나와 조금 걸으면 대형 옹관 고분 수십 기가 분포하는 반남 고분군이 모습을 드러낸다.
반남 고분군은 삼포강이 둘러싼 자미산을 중심으로 덕산리, 신촌리, 대안리 일대에 분포하는 40 여기의 삼국시대 무덤을 일컫는다. 반남 고분군에는 대형 옹관 고분 수십 기가 분포한다. 대형 옹관 고분이란 지상에 분구를 쌓고 그 안에 시신을 안치한 커다란 옹을 매장하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회의 독특한 고분 양식이다.
일제강점기에 처음 발굴된 반남 고분군의 형태는 원형 또는 윗부분이 잘린 피라미드를 띠고 있다. 고대 문화를 추측하는 데는 죽은 자를 위해 무덤에 함께 넣은 껴묻거리가 큰 도움이 된다.
신촌리 9호분 을관에서는 금동관, 금동신발, 환두대도 등 최고 권력자가 소유하는 물건들이 출토됐다. 신촌리 9호분은 반남 고분군 가운데 가장 높은 구릉 중심에 단독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10여기의 독널이 묻혀있는데 이들은 가족이나 같은 집단인 것으로 보인다. 1999년 재발굴 조사에서는 고분 정상부를 장식한 원통형 토기 2개도 출토됐다. 대형옹관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에서는 백제계 일본계 유물이 일부 섞여있고 가야계 특징도 보이고 있어 당시 백제, 가야, 왜등과 활발한 교류를 진행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복암리 고분군= 복암리 고분은 영산강 유역 토착 세력이 백제와 가야, 신라, 일본 등 한반도 주변세력과 교섭하며 자신들의 위상과 문화를 지켰던 우리 고대사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곳은 영산강 본류를 낀 구릉지대로, 3기가 더 있엇으나 경지 정리 과정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1호분 내부에는 백제 영향을 받은 굴식돌방무덤이 자리잡고 있으며 평면 사다리꼴 모양의 2호분에서는 원통형 토기 등 각종 토기와 말뼈, 소뼈 등이 함께 확인됐다. 한변이 최대 42m로 최대규모인 3호분에서는 독널무덤 22기, 구덩식 돌덧널무덤 3기, 굴식돌방무덤 11기 등 총 41기의 무덤이 확인됐다. 3호분에서는 영산강 유역에서 확인되는 옹관묘와 횡혈식석실묘, 석곽옹관묘 등과 함께 금동신발, 은제관식 등 권위를 상징하는 유물 799점이 출토됐다. 다양한 유물이 출토될 수 있었던 것은 도굴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굴조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3호분에서 3세기 옹관묘와 7세기 전반 묘제가 한분구안에서 확인돼 400여년 간 동일한 문화적 전통을 지닌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한분구 안에서 다양한 묘제가 확인된 것은 우리나라 첫 사례인 것으로 알려졌다.
복암리 고분이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300m가량 떨어진 나주 복암리 고분 전시관에서는 1998년 복암리 3호분이 발굴된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전시관이 건립된 자리는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확인되기도 했다. 2000년 전 중국에서 사용한 화폐 ‘화천’도 이곳에서 발굴되며 아주 오래전부터 중국, 가야, 일본 등과 활발하게 교류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낮고 길쭉한 모양에서 높고 네모난 형태로 바뀐 무덤의 형태 변화, 무덤 속 옹관의 형태와 굴식돌방이라는 새로운 무덤방 형태의 변화 등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가장 많은 무덤이 확인된 복암리 3호분을 커다란 규모의 모형으로 전시해 독무덤, 굴식돌방무덤, 돌방무덤 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김다인·김민수 기자 kdi@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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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국립나주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
전시는 독널 생산 방식, 독특한 무덤 구조, 친족 중심의 추가장 등 독널무덤의 고유한 특징을 조명한다.
먼저 상설전시실에서는 기원전 1500~1000년경 시작된 영산강 유역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다양한 도구들을 소개한다. 전남에서 확인된 2만여개의 고인돌은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량과 밀집도를 보인다. 고인돌과 함께 묻은 껴묻거리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주 신촌리 9호분에서 발견된 국보 제295호 금동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금동관은 문화에 따라 형태가 서로 다른데 백제는 고깔형, 신라나 가야는 둥근 테를 중심으로 나뭇가지 모양 장식을 단 대관형이다. 나주 신촌리 금동관은 모관과 대관이 함께 세트를 이루는 형태로, 백제의 관들과 다른 독특한 지역양식을 띠고 있다.
독널의 곡선과 결을 더욱 가까이에서 눈에 담을 수 있는 기획전시실에서는 ‘영원한 안식, 땅에 안겨 잠들다’를 주제로 한 영상미디어가 상영된다. 높은 천장, 어두운 공간속 독널을 비추는 환한 조명 아래 서 있다보면 독널을 만들었던 고대인들의 마음과 고된 시간과 정성을 떠올려보게 된다.
박물관 1층에 있는 실감콘텐츠 체험관에서는 영산강 유역 고대 고분문화를 신기술융합콘텐츠로 구현한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총 4부로 나눠져 떠나는 이에 대한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고분 주인의 금동신발 속 수호신들의 이야기, 어둠 속 고이 잠들어있던 금동관의 발견, 태초부터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며 역사와 문화를 꽃피운 영산강의 여정을 다룬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회차별 30명씩 관람이 가능하다.
단체 관람객에 한해 특별전시에 대한 전시기획자의 깊이 있는 전시 해설도 신청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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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촌리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 |
반남 고분군은 삼포강이 둘러싼 자미산을 중심으로 덕산리, 신촌리, 대안리 일대에 분포하는 40 여기의 삼국시대 무덤을 일컫는다. 반남 고분군에는 대형 옹관 고분 수십 기가 분포한다. 대형 옹관 고분이란 지상에 분구를 쌓고 그 안에 시신을 안치한 커다란 옹을 매장하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회의 독특한 고분 양식이다.
일제강점기에 처음 발굴된 반남 고분군의 형태는 원형 또는 윗부분이 잘린 피라미드를 띠고 있다. 고대 문화를 추측하는 데는 죽은 자를 위해 무덤에 함께 넣은 껴묻거리가 큰 도움이 된다.
신촌리 9호분 을관에서는 금동관, 금동신발, 환두대도 등 최고 권력자가 소유하는 물건들이 출토됐다. 신촌리 9호분은 반남 고분군 가운데 가장 높은 구릉 중심에 단독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10여기의 독널이 묻혀있는데 이들은 가족이나 같은 집단인 것으로 보인다. 1999년 재발굴 조사에서는 고분 정상부를 장식한 원통형 토기 2개도 출토됐다. 대형옹관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에서는 백제계 일본계 유물이 일부 섞여있고 가야계 특징도 보이고 있어 당시 백제, 가야, 왜등과 활발한 교류를 진행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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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암리 고분 전시관에 재현돼 있는 금동신발. |
1호분 내부에는 백제 영향을 받은 굴식돌방무덤이 자리잡고 있으며 평면 사다리꼴 모양의 2호분에서는 원통형 토기 등 각종 토기와 말뼈, 소뼈 등이 함께 확인됐다. 한변이 최대 42m로 최대규모인 3호분에서는 독널무덤 22기, 구덩식 돌덧널무덤 3기, 굴식돌방무덤 11기 등 총 41기의 무덤이 확인됐다. 3호분에서는 영산강 유역에서 확인되는 옹관묘와 횡혈식석실묘, 석곽옹관묘 등과 함께 금동신발, 은제관식 등 권위를 상징하는 유물 799점이 출토됐다. 다양한 유물이 출토될 수 있었던 것은 도굴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굴조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3호분에서 3세기 옹관묘와 7세기 전반 묘제가 한분구안에서 확인돼 400여년 간 동일한 문화적 전통을 지닌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한분구 안에서 다양한 묘제가 확인된 것은 우리나라 첫 사례인 것으로 알려졌다.
복암리 고분이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300m가량 떨어진 나주 복암리 고분 전시관에서는 1998년 복암리 3호분이 발굴된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전시관이 건립된 자리는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확인되기도 했다. 2000년 전 중국에서 사용한 화폐 ‘화천’도 이곳에서 발굴되며 아주 오래전부터 중국, 가야, 일본 등과 활발하게 교류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낮고 길쭉한 모양에서 높고 네모난 형태로 바뀐 무덤의 형태 변화, 무덤 속 옹관의 형태와 굴식돌방이라는 새로운 무덤방 형태의 변화 등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가장 많은 무덤이 확인된 복암리 3호분을 커다란 규모의 모형으로 전시해 독무덤, 굴식돌방무덤, 돌방무덤 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김다인·김민수 기자 kdi@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