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각 장애를 가진 서미화(여·54)씨. 장애에 굴하지 않고 끝없이 노력한 그가 오는 25일 열리는 조선대 대학원 졸업식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서씨는 논문 ‘시각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가 자립의지에 미치는 영향’(지도교수 김용섭, 공동지도교수 박희서)을 완성했다. ‘시각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로 파견되는 ‘장애인 도우미’에게 장애인의 개인차를 고려한 교육·평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입증한 논문이다.

서씨가 취득한 박사 학위에는 시각장애인으로서 그가 겪어온 차별과 아픔이 묻어 있다.

서씨는 중학교 2학년 시절 망막색소변성증이 발병한 이후 계속해서 시력이 나빠졌다. 어렵사리 공부한 끝에 학력고사를 치렀으나, 답안을 OMR 카드에 기록하게 해 답안지 작성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원하는 대학을 포기하고 전문대학에 진학했지만, ‘왜 우리 대학에 왔냐’는 모욕적인 말을 들으며 공부해야 했다.

학업 의지를 잃고 방황하던 그는 30대에 교통사고로 6개월여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이 때 “시력 외 다른 신체 기능이 모두 건강했었다는 새로운 발견을 했다”는 그는 “불평만 하고 살아온 날들을 깊이 반성하고, 36세에 목포대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했다”고 돌아봤다.

이후로도 사회복지학 공부를 계속 하고 싶었으나 공부할 학교를 찾기조차 쉽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을 지도해 본 교수가 없다’며 여러 대학에서 입학을 거부당했던 것이다. 서씨는 “사회복지를 가르치는 교육 현장에서 실제로는 장애인 학생을 받을 수 없다는 현실이 아이러니했다”고 돌아봤다.

서씨는 유일하게 원서를 쓰도록 권유한 조선대를 통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조선대는 박사과정 대학원생들 중 동의를 받아 ‘시각장애인 도우미’를 선발해 서씨를 돕기도 했다.

“터미널에 마중나와 준다던가, 수업 시간에 함께 공부하며 설명해주는 식이었어요. 비장애인학생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차별·배제 당하지 않게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지요.”

서씨는 장애인을 위한 인권 운동에도 적극 나서 왔다. 전남여성장애인연대 공동대표 활동이 대표적이다. 여성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지원안 등 다양한 인권 관련 정책을 제안하고 법률 제·개정 청원 등 활동을 했다.

“2005년 목포대를 졸업한 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얻고 취업문을 두드렸는데, 아무도 받아주질 않았어요.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만 부각돼 ‘보호대상’으로만 보고, 전문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인으로 보지 않았던 거에요. 동료, 전문가로 나를 받아주질 않는 사회를 바꾸고자 인권운동에 나서게 됐습니다.”

이같은 생각은 “장애인을 원하는 곳이 없다면 우리가 그 곳을 만들자”는 의지로 번졌다. 서씨는 2005년 전남지역 최초로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를 개소, 전 직원 중 50%를 장애인으로 고용하며 ‘장애인 취업’을 이끌었다. 또 시민운동 단체 추천을 받아 2010년 장애인 직능대표로 목포시 제 9대 시의원으로 당선, 전남지역 최초 장애여성 의원이 되기도 했다.

현재 유달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소장, 전남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 중인 서씨는 앞으로도 차별받는 장애인의 인권을 지키고자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싶어한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경험과 박사 학위의 전문성을 살려 정책 개발과 제언, 법률 제·개정 활동을 계속 지원하겠습니다. 또 장애인권운동 현장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