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돼지열병이 국내에서 발생한지 며칠 만에 추가 의심신고가 잇따르면서 양돈농가가 비상이다. 정확한 발병원인은 아직 파악하지도 못했지만 발생 농가의 돼지들이 바로 살처분되는 뉴스를 접하니 마음이 편치않다.

참으로 돼지는 우리에게 두가지 상반되는 감정이 공존하게 되는 것 같다.가장 더러운 곳에서 음식찌꺼기를 ‘돼지같이’ 먹고 사육된 후 맛있는 고기를 인류에게 제공하는 한편 누구나 꿈꾸고 싶어하는 ‘돼지꿈’이라는 풍요의 상징으로서 행운이나 복을 암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돼지를 소재로 한 그림을 자주 그려 한때 ‘돼지 작가’라 불리기도 했던 최석운작가(1960~ )의 ‘돼지들’(2000년 작)은 생각 없이 먹고 자고 살찌우는 돼지가 아니라 인간을 향한 응시를 통해 무엇인가 말하려는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인류에게 가장 유용한 동물 가운데 꿀벌보다도 앞서 첫손에 꼽히는 돼지의 긍지가 느껴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백돼지와 흑돼지가 어우러져 있는 모습은 과도한 육식과 그 수요를 맞추기 위해 대규모 공장식 축산 시스템으로 돼지를 키우고 있는 현실의 양돈농가를 묘사하는 듯 하다.

‘자유로운 상상력에서 발현되는 회화적 골계미’를 보여주고 있는 최석운 작가는 돼지, 개 등 우리 일상생활에서 자주 만나는 동물을 의인화하여 세태를 풍자해오고 있다. 돼지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자화상, 돼지와 함께 탱고를 추는 중년남자의 익살스러운 표정, 장난꾸러기 돼지와 이를 경계하는 새 등 돼지의 코믹하고도 다양한 모습에서 돼지가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거듭날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전문가들은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최악의 경우 한반도에서 돼지가 멸종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동물이 살 수 없는 환경으로 인한 폐해는 고스란히 인간이 감당해야 할 것 같아 두렵다.

<광주시립미술관 학예관·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