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쉼이 필요하다.



젊음이 넘치는 해변에서 한 발짝 물러나 차분하게 수평선을 마주하고 싶을 때처럼 말이다.

보성 율포솔밭해수욕장에서 ‘다향길’을 따라 30여 분을 느릿느릿 걷다 보면 회천면 군농리 금광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은 율포해수욕장에서 서당리까지 가는 다향길 2구간(7.7㎞)의 중간 정도에 있다. 생태문화탐방로 ‘다향길’은 득량만 정취를 오롯이 느끼기에 손색없는 해변길이다.

총연장 42.195㎞ 4개 구간으로 만들어진 다향길에서 2구간은 휴식을 담당한다.

1.2㎞ 펼쳐진 백사장에 이어 바닷가를 따라 만들어진 1.6㎞의 지압로를 밟고, 바지락과 작은 게들이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개펄도 거친다. 고즈넉한 어촌 마을의 풍경은 산책길의 눈요깃거리다. 어른 키보다 높은 바위와 아기자기한 몽돌이 물결에 맞춰 서로 비비대는 풍광에서는 이 마을이 겪었을 억겁의 세월이 느껴진다.

다향길은 차소리문화공원주차장∼봇재다원∼영천제∼정응민 생가∼제2다원∼팽나무외줄기군락지∼명교리해수욕장∼율포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1구간(16.5㎞·5시간), 서당리∼공룡알화석지∼선소어촌체험장∼비봉공룡공원으로 통하는 3구간(9㎞·4시간), 공룡공원∼원곡마을∼득량만 방조제로 끝맺는 4구간(9㎞·4시간)으로 이뤄져있다.

금광마을의 진가는 태양이 득량만 바다에 미광을 비출 때 나온다. 내공 있는 사진작가들은 한 번쯤 이곳의 일출을 앵글에 담아가곤 한다. 율포에서 하룻밤 묵은 여행객들이 아침 마실에 우연히 금광마을에 다다라 발길을 멈추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민들은 “왜 이런 보물 같은 마을이 숨겨져 있냐”는 관광객들의 애먼 핀잔을 듣기도 한다.

33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마을은 인근 신촌·동백·군지마을과 ‘군농 1구’를 이루고 있다. 군농 1구의 300여 주민 대부분은 50~90대로, 마을 간 왕래가 잦다.



보성 읍내에서 시집 와 15년 간 금광마을에서 살아온 신연옥(58)씨는 주변 사람들 말로 ‘신식 생활’을 즐기고 있다.

“친정이 보성역 쪽인데 요새 우리 마을도 많이 나아져서 친정 생각이 덜 나요. 오전에는 마을을 한 바퀴 거닐고 오후에는 율포에 있는 커피숍에 가서 차 한 잔 하곤 해요. 방학을 맞아 손주들이 오면 율포에서 물놀이하고 우리 마을에서 갯벌 체험하는 게 정석이랍니다. 올해 91세 된 마을 최고령 할머니처럼 조그마한 밭 일구면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요.”

8월의 따가운 햇볕을 피해 새벽에 일을 마친 주민들은 마을 보호수가 있는 평상에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눈다.

온통 은빛과 연하늘색을 발하는 해안에 우뚝 솟은 팽나무를 보고 있자니 마치 외딴 섬처럼 보인다.

마을 토박이 조귀득(80)씨는 낯선 외지인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풀어냈다. 조씨의 이마에는 주름이 깊게 패이고 그을린 손은 뼈마디가 굵었다.

“여름에는 새꼬막, 가을에는 전어와 뻘낙지를 잡으며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치다 보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죠. 지금은 이 마을의 풍경처럼 시간이 멈춰있는 것만 같아요. 코흘리개 때부터 함께한 이 나무랑 늙어가는 수밖에요.”

/백희준 기자 bhj@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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