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한 반일 감정이 요즈음 여름날씨보다 더 뜨겁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서 안사고 안가고 안타고 등 불매운동에서 더 나아가 일본에 대한 국민 행동강령까지 등장했다. 어떻게 해야 극일(克日)하고 승일(勝日)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는 날들이다.

시절이 하 수상해서 시골집 뜰에 핀 봉숭아꽃을 보는 마음도 복잡하다.

언제나처럼 어린 시절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던 추억 속 한 페이지를 떠올려보지만, 오늘만큼은 일제 강점기에 나라 잃은 처량한 신세를 달래며 애절한 민족의 염원을 담았던 노랫가락이 먼저 비장하게 귓가에 맴돈다.

우리 지역 여성미술인의 선구로서 손꼽히고 있는 고정희작가(1937~ )의 ‘뜰에 봉숭아’(2013년 작)는 여름날 풀섶이 있는 곳에서는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봉숭아꽃을 여리고 순박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70여년 이상을 그림과 함께 살아온 고정희 작가는 “아파트 베란다에 좋아하는 꽃들을 키우고 있는데, 어느 날 뙤약볕에 지쳐있는 봉숭아꽃을 보고 어린 시절 추억이 방울방울 떠올라 여름풍경의 상징으로서 화폭에 꽃시리즈를 담았다”고 들려준다.

무더위에 늘어져있는 봉숭아꽃에 민족의 감성을 감정이입해서인지 화사하면서도 수줍고 은은하면서도 자신감 있게 표현한 잎새가 강인해보인다.

광주사범대학 미술과를 나와 교단에서 후학을 길러왔던 고정희작가는 퇴직 후 더욱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원로화가. 꽃시리즈에 이어 최근에는 알래스카여행을 다녀와 여행 중에 만난 산과 풍경 작업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광주시립미술관학예관·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