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미포마을의 초대 어촌계장인 강남숙(58·사진)씨의 수첩은 유명인의 수첩에 뒤지지 않는다.

강씨를 만난 지난 5일 일정에도 ‘어촌계 운영위 회의’, ‘시청 건설과 면담’, ‘수산 직불금 신청’ 등 17개가 빼곡히 적혀있다. 미포마을 이장, 어촌계장, 남면 어촌계 총무, 공인 중개사, 교회 집사 등 그의 다채로운 직업을 알고 나면 촘촘한 일정에 설득이 된다.

‘마을 일을 혼자 다 하시는 건 아니죠?’라는 물음을 삼키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35년 동안 해군으로 살아온 강씨가 정년 퇴역한 뒤 선택한 것은 ‘귀어’였다. 금오도 여남초·중학교를 다니다 뭍에서 학업을 이어간 그는 부대가 있는 경기 평택에서 인생의 절반을 살았다. 퇴역한 1년 뒤 공인 중개사 시험에 합격하면서 귀어 첫발을 내디뎠다.

“은퇴 세대인 제 친구들은 제가 군대를 벗어나니 더 힘겹게 살고 있다고 핀잔을 주곤 해요. 새벽 4시에 일어나도 일정을 겨우 소화하니 좋아하던 낚시도 자주 가진 못해요. 어촌계장이 바쁘다는 건 우리 마을에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니 반가운 일이지 않겠어요?”

강씨는 해양수산부가 공모하는 ‘어촌뉴딜 300’ 사업에 기대를 걸고 있다.

“처음에는 레일바이크와 카약 체험장 등 잘되는 마을에 있는 관광 사업은 다 유치하고 싶었어요. 다시 생각해보니 관광객이 몰려오더라도 이들을 맞을 주민이 행복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겠더라고요. 도로·주차장·공용 화장실과 CCTV·안전 난간·조명과 같은 기본적인 주거 편의 시설을 충분히 갖추는데 사업의 초점을 맞췄습니다.”

강씨는 ‘쉼터 같은 휴양지’를 미포마을의 청사진으로 내놓았다. 그는 함평 석두어촌체험마을을 견학한 경험을 살려 카라반 야영지와 자전거 대여소, 1㎞ 해양 데크길 등을 마련하고 배드민턴장·족구장을 갖춘 체육공원을 조성한다는 내용으로 사업계획서를 채울 계획이다.

/백희준 기자 bhj@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