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읽었던 에세이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골목길 기행을 주제로, 당시만 해도 드물었던 계획도시 창원과 목포를 비교한 글이었던 것 같다. 창원은 골목길을 일부러 찾아보아도 모든 길이 신작로 같았고, 목포는 신작로를 걸어 보려 해도 모든 길이 골목길 같았다는 내용이었다. 수 십 년 전에 이 대목을 대했을 때는 영 호남 차별이라는 정치적, 권력적 의미로만 받아들여 분노했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온다.

대한민국의 많은 도시들이 사회공동체 대신 건물공동체만 남을 정도로 개발의 광풍이 휘몰아쳤을 때도 고유한 역사와 오랜 삶의 터가 골목길로 상징될 수 있다는 점을 그때는 몰랐던 것 같다.

요 며칠 목포가 뜨겁다. 목포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고향이어서 여행도 가고 놀러도 갔던 곳일 뿐만 아니라 한때 대학 강의를 하느라 몇 학기를 줄곧 다녔기에 그지없이 정겨운 곳이다. 구도심의 적산가옥을 여행자의 눈으로 보면서 근대의 역사적 비극을 떠올리고 지난 세월의 흔적을 상상해 보면서 무한한 시간여행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부디 목포 문제가 정치적 논리가 아니라 도시 재생의 차원에서 현명한 해법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민 작가(1963~ )의 ‘공장 지대’(2015년 작)는 지금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곳으로 근대 산업 유산인 조선내화 옛 공장 건물과 공장 뒤편 온금동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적산가옥들을 그린 작품이다. 10여 년 전부터 사라져가는 장소를 화폭에 담아오고 있는 이민 작가는 목포의 북항, 목포역, 해안 도로와 수산물 시장, 작은 적산가옥들이 모여서 만드는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비롯해 얼마 전부터는 양림동과 방림동 등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는 추억의 장소를 따뜻하게 표현해오고 있다. 목판화 작가로 이름난 이민 작가는 최근 판화와 회화를 섞는 방식인 판 타블로(Pan Tableau)기법을 고안해 새로운 조형언어로써 지난 삶의 풍경들을 소환하는 작업을 드라마틱하게 펼쳐내고 있다.

<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