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방, 내 딸 어릴 적 얘기 읽어 보겠나”
2025년 04월 08일(화) 19:55
16년간 쓴 딸 육아일기 사위에게 전하는 김성범 곡성 도깨비마을 촌장
1995년 11월 태어난 날부터의 추억 노트 8권에 빼곡히
아들은 군대 가기 전까지 기록…“힘들 때 용기 얻었으면”

김성범 곡성도깨비마을 촌장은 딸 참들이가 태어날 때부터 16년간 작성한 육아일기장을 결혼식날 사위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함께 공연하고 있는 김성범·참들 부녀. <김성범 작가 제공>

1995년 11월 21일. 딸 참들이가 태어난 날 아빠 김성범(곡성 도깨비마을 촌장) 동화작가는 일기를 썼다. 마침 이 날은 아내의 생일이기도 했다. 세 살 터울 아들 한결이와 함께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딸의 탄생을 기다리던 아빠의 육아일기는 2011년 6월 30일까지 이어졌다. 오는 19일 참들이의 결혼식을 앞두고 아빠는 일기를 하나 하나 읽어보는 중이다. 웃음과 눈물이 담긴 일기장은 이제 사위에게 인수인계할 예정이다. 김작가는 한결이의 육아일기도 썼다. 아들의 일기는 태어날 때부터 시작해 군 입대 전까지 이어졌다.

“아이가 태어나면 육아일기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해 할 지도 모르니 기록을 해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결혼식 때 배우자에게 선물로 주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했고요. 아마도 저의 어린 시절이 그리 행복하지 않아 어떤 보상심리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너희들에게는 그런 순간들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랄까요.”

김성범 작가가 쓴 8권의 육아일기.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일기장은 8권에 달한다. 김 작가는 일기를 쓰고 난 후에는 바로 밀봉해 두었고, 결혼식을 앞두고 수십년만에 다시 일기장을 들여다 보는 마음은 뭉클하다. 아빠처럼 서서 오줌 누고 싶어하는 이야기, ‘흥’ 하고 코 푸는 방법을 배운 날 시도 때도 없이 코를 풀고 다닌 이야기, 식사 후 먹으라는 말에 책상 서랍에 아이스크림을 넣어둔 이야기, 뮤지컬 ‘화려한 휴가’를 보며 함께 울고 시내에 나가 귀를 뚫고 온 이야기 등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마지막 일기에는 기말고사 시험기간 공부는 하지 않고 오빠와 투닥거리는 모습이 담겼다.

“참들이가 태어날 때 반응이 굉장히 느려서 걱정이 많았어요. 무슨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노심초사했죠. 그래서 참들이는 늘 가족들이 마음에 담고 다닌 아이였어요. 다행히 시력이 좋지 않아 반응이 느렸다는 사실을 알았고, 아이와 소통이 될 때 다들 너무 감사했죠. 이후에는 그저 튼튼하게만 자라 달라는 마음이었습니다.”

현재 곡성의 숲속에서 경치 좋은 작은 서점 ‘품안의숲’과 게스트하우스 ‘품안의밤’을 운영하고 있는 참들씨는 요즘 아빠가 한장 씩 찍어 보내주는 일기를 보며 추억을 떠올리는 중이다.

“얼마 전 방영된 ‘폭싹 속았수다’에서 부모 자식간의 사랑 이야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아빠가 보내 주신 글들을 읽는데 굉장히 웃긴 내용인데도 슬프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제가 어릴 때 많이 아파서 가족들이 고생이 많았어요. 아빠랑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아동센터 등을 찾아 동요를 부르며 봉사하고, 여행했던 기억이 나네요. 오빠 공부하는 데 방해된다고 엄마가 나가서 놀라고 하면 아빠와 충장로, 홈플러스 가서 구경하고 놀다 오던 일도 생각나고요.”

귀한 선물을 받게 된 사위 이정찬씨는 “아버님이 딸을 애지중지 키워주신 기록이 담긴 소중한 일기장을 받으니 너무 감사하다”며 “아버님처럼 참들이를 소중히 여기고 저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결혼한 아들 한결씨의 육아일기장에도 아빠 늙으면 생선 가시를 다 발라주겠다거나, 엄마 아빠 세계 여행을 보내준다는 계약서, 아이가 그린 그림 등이 담겼다. 김 작가는 아들 결혼식 때 ‘덕담’ 형식으로 일기장의 내용을 간추려 발표해 감동과 웃음을 전했다.

“며느리에게 일기장을 주려고 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의외로 유치원 때부터 아들 녀석 여자 문제가 남달라 아직 전달하지 않고 있습니다(웃음). 오빠 결혼식 모습을 본 참들이가 우는 신부가 되기 싫다며 덕담 내용을 미리 알려달라고 했는데 안된다고 했어요. 일기장을 한장 한장 펼쳐 보며 그 때를 떠올리는 데 아련합니다.”

세무사인 김 작가는 조각가이자, 동화작가, 작곡가, 요들송 가수다. 입시미술학원에 다니며 조소를 배웠고, 문창과에 진학해 글쓰기를 공부한 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혼자의 힘으로 곡성 도깨비마을을 일궈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동화작가인 아빠의 작품에는 아이들 이야기가 나온다. 현재 집필중인 ‘마녀 소녀 나채율’과 ‘비밀로 가득찬 세상’ 등에 참들이 이야기가 등장한다.

“일기를 쓰면서 혹시 우리 애들한테 사춘기가 와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전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애들이 고민이 많을 때 자신이 어떻게 자라왔는지 담긴 일기를 읽으면 다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을 거라 믿었거든요. 큰 어려움과 바꿔낼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거라고도 생각했고요. 만약 다행스럽게 그 시기가 오지 않는다면 결혼할 때 배우자에게 전해주자 싶었습니다. 아이 때문에 참 힘들어하던 후배가 생각나요. 그 후배가 제가 육아일기를 쓴다는 걸 알았을 때 왜 자신에게도 한 번 써보라고 충고를 해주지 않았냐고 하더군요. 알았다면 일기를 써, 아이의 삶을 기록해 줄 수 있었고, 그게 아이한테 어떤 힘이 될 수도 있었다면서요.”

아빠는 SNS에 이렇게 썼다. “읽다 보니 사위 찬아,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감당하기 힘든 일도 많았더라. 물리기 없기다” 마지막에 “시원섭섭하다”고 말했지만, 결혼식장에서 딸의 모습을 본 아빠의 눈에는 눈물이 고일지도 모를 일이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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