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 ‘무더위 쉼터’ 원두막이 그립다
2025년 06월 29일(일) 19:40
[농산물품질관리사 김대성 기자의 ‘농사만사’]
형태·기능 변모했지만 나눴던 정은 변치 않길

/클립아트코리아

지구 온난화 이상기후 탓인지 장마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온열 질환을 부르는 불볕더위에도 소소한 행복을 주는 곳이 있어 위안이 됐다. 지금으로 치면 ‘무더위 쉼터’라 할 수 있는 원두막이 그것이다. 에어컨이 없던 그 시절 원두막은 최고의 피서지였다. 동네 앞 들녘을 걷다가 지칠 정도면 만나는 원두막은 사방이 뚫려 있어 시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길손들이 참외며 수박을 사 먹으며 땀을 들이며 쉬어 가는 곳이기도 했다.

원두막은 또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들에서 일하다가 새참도 먹고 낮잠도 자는 곳이었다. 오며 가며 모인 어른들은 원두막에 앉아 막걸릿잔을 나누기도 했다. 어수룩해지면 아이들의 은밀한 작전 수행을 위한 아지트가 되기도 했다.

원두막은 주야가 없었다. 한쪽에 준비된 두툼한 이불이 말해주듯 한밤중에는 제법 서늘하기까지 했다. 모기향을 피우고 수박 한 통 쪼개 먹으며 밤늦게까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 무더위도 쫓고 수박 서리 하러 오는 ‘밤손님’도 쫓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였다.

그런 원두막을 언제부터인가 보기 쉽지 않게 되었다. 농사가 줄어드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주원인은 참외와 수박 등 원예작물이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서리라는 단어도 거의 잊혀졌다. 인심이 각박해질 대로 각박해지면서 서리가 도둑질과 동일 행위가 되었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농촌에는 참외나 수박밭에 몰래 기어들어 갈 말한 아이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일 게다. 누구로부터 무엇을 지키겠다고 원두막을 지을 것인가.

사라진 원두막은 폐컨테이너가 대신했다. 무더위에 고생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자녀가 선물하거나, 자비를 들여 설치하기 시작한 것들이다. 논·밭농사를 위한 장비를 보관하는 창고이자 피곤한 몸을 잠시 누이는 휴게소 역할로 현대식 원두막인 셈이다. 내부도 실용적으로 꾸며 놓고, 냉장고며 에어컨까지 갖춘 호화로운 시설도 있다.

산밭이나 소규모 농장에 있는 좀 더 호사스러운 농막(農幕·farm hut)도 일종의 원두막이라고 할 수 있다. 농막은 농작업에 필요한 농자재와 농기계를 보관하거나 수확물을 간이 처리할 때 혹은 농작업 중 일시 휴식 등의 목적으로 설치하는 간이 건축물(천막)을 가리킨다. 또 농지법상 농막은 임시 시설(연면적 20㎡ 이하)로 주거목적이 아닌 경우로 한정하고 있고 가설건축물로서 ‘소방시설법’ 상 안전기준을 적용받지 않아 산불 등 자연재해나 화재 등 안전사고에 매우 취약해 관련법에서도 주거를 허용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허용되지 않는 숙식이 일상이 되면서 화재 등 사건 사고가 잇따르고 전원주택 단지와 유사한 형태로 농막 단지를 분양하는 등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빈번해 문제가 됐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등장한 것이 ‘농촌체류형 쉼터(이하 쉼터)’이다. 농막에서 발생한 현실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최근 농지법 시행규칙 개정에 기반을 둔 농촌 주거시설이다. 농업인과 주말·체험영농 희망자들이 농지전용허가 없이 간편하게 설치할 수 있는 가설건축물이다. 연면적은 33㎡ 이내로 제한되지만, 데크·주차장·정화조 등 부속시설은 면적 산정에서 제외돼 실용성과 설치 편의성이 대폭 개선됐다. 각 지자체가 잇따라 농지 활용과 농업인 등의 편의 증대를 위한 쉼터 제도를 본격 시행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절이 변해 농민들의 쉼터는 원두막에서 컨테이너와 농막, 농촌체류형 쉼터로 진화하고 있지만, 농사하며 찾는 소박한 즐거움과 함께 나누는 정 그리고 농사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만큼은 변치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big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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