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교수(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는 최근 저서 ‘열 두 발자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묻는다. 그 질문에 대한 가장 많은 답변 중 하나가 “어린 시절 해변에서 모래성을 쌓을 때였다”고 들려준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면 부모님이 흐뭇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 안전함을 느끼고, 자연과 함께 있으며, 고개를 들면 바다가 보이는 상황, 즉 놀이에 몰두했던 동안에 행복해한다는 것이다. 정말 행복한 순간은 평범한 일상에서 찾을 수 있다는 데에 공감해 본다.

나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이들이 첫걸음을 떼었을 때의 환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조금 허약하게 태어난 아이가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 늦게 기고, 서면서 ‘드디어’ 첫발을 들고 내게로 왔을 때의 그 첫걸음의 기쁨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한발 한발 아슬아슬하게 두 팔을 벌린 내게 다가오던 첫걸음은 그간의 조바심과 우려에서 벗어나게 했고, 이 연약한 아이의 앞날을 위해 평생 착하고 남을 위해 배려하고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었다.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첫걸음’(1858년 작)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딸을 조심스럽게 잡고 있는 엄마와 일하던 삽자루를 던지고 두 팔 벌려 딸의 첫걸음을 반기는 아빠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장면으로 꼽고 싶다. 나의 심정이 감정이입 되기도 했겠지만 감히 이 한 점의 그림을 나의 ‘인생 그림’으로 간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밀레는 프랑스 2월 혁명 시기에 일군의 화가들과 함께 프랑스의 바르비종이라는 마을에 모여 새로운 시각으로 자연을 관찰하여 풍경화와 농부들의 진솔한 생활을 그리기도 했다.

밀레의 치열한 농민화는 당시 아카데미의 고상하고 점잖은 그림과 거리가 멀어 가히 ‘미술의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조화롭고 억제된 색채구성, 소농 가족의 소박함이 당시만 해도 그림의 소재가 되기에는 어색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