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무섭고 각박해졌다고 하지만 연말 분위기를 따뜻하게 밝히는 것 중 하나는 이즈음 광주 곳곳을 환하게 비추는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인 것 같다. 지난 주말 영화 ‘바울’을 관람한 것도 조금은 경건한 마음으로 세밑을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린 날 크리스마스 무렵 TV ‘주말의 명화’에서 ‘벤허’ ‘십계’ ‘소돔과 고모라’ 등 기독교 영화를 방영할 때면 온가족이 한데 모여 보았던 시절이 이 계절 그리워지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다가 개종한 다음 그 자신 박해를 받고 참수형을 당한 사도 바울은 신앙이 조직화된 종교로 시작할 수 있도록 초기 교회의 모습을 구체화시킨 인물. 십자가를 죽음이 아니라 부활로 해석하고 교회의 상징으로 만든 주인공이기도 해서 영화를 통해 만난 사도 바울과 함께 ‘길고 긴 신앙의 여정’을 떠나는 것은 영화 감상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열아홉 살 때부터 죽을 때까지 소묘, 판화, 그리고 유화로 백여 점에 달하는 자화상을 남겼던 렘브란트(1606~1669)는 ‘사도 바울풍의 자화상’(1661년 작)을 그리기도 했다. 렘브란트는 왜 사도 바울풍의 자화상을 그렸을까? 수많은 자화상을 그리면서 자신의 그림과 존재에 대해 질문 던지기를 반복한 그가 바울을 통해 묻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을 어쩌면 자신의 페르소나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립을 좋아했고 이 대립의 표현을 매우 강렬하게 다듬어서 ‘명암법의 대가’라 불렸던 렘브란트는 이 작품에서도 대상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대비를 깊은 입체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렘브란트의 화폭은 두 개의 구성을 동시에 담고 있는데 하나는 재현된 신체나 물체를, 다른 하나는 빛의 거처이다”라는 언급으로 ‘명암법에 대한 최고의 지성’임을 찬탄했다.

<광주비엔날레정책기획실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