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정마을 앞바다에서 자라고 있는 매생이가 가뜩이나 푸른 바다를 더 푸르게 물들이고 있다. 배를 타고 나가 양식장을 손보는 마을 주민들의 손길이 분주해보인다.

“일하러 나가세요?”

마을 초입에서 만난 어머니 두분은 장화를 신고 손에는 양동이 하나씩을 들고 있었다. 어머니들은 “놀러간다”고 했다. 그들이 향한 곳은 마을 앞 바다 갯벌. 물이 빠지는 간조가 되자 바닷물에 숨겨져 있던 갯벌과 바위가 드러난다.

집채만 한 바위에는 자연산 굴이 빼곡하다. 모양새가 마치 꽃이 흐드러지게 핀 듯하다. 왜 굴을 돌에 핀 꽃이란 뜻의 석화(石花)하고 부르는지 비로소 실감이 난다. 이들에겐 바다는 일터이자 놀이터였다. 한 평생을 바다에서 보냈다. 바다를 생의 터전 삼아 살아가고 있었다.

전남 완도군 고금면 상정마을은 제법 규모가 큰 동네다. 고금면에서 제일 인구가 많은 대촌(大村)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면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줄었다고 해도, 여전히 140여가구 250여명이 살고 있다.

도로변에서 바라본 마을의 모습은 대촌이라고 짐작키 어려울 정도로 작은 어촌 마을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골목 사이사이 자리 잡은 주택들이 마치 미로에 들어온 느낌을 준다.

지나던 한 마을 어르신은 “마을 한 바퀴 다 돌라면 한 시간으로는 턱도 없다”며 “처음 방문한 외지인들은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농담을 건넸다. 그 정도로 규모가 상당하다는 뜻이다. 또 집집마다 유자와 귤, 야자수 등 열대나무가 심어져 있어 담벼락을 따라 걷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상정마을은 고금면에서도 남서쪽에 둥지를 틀고 있다. 상정마을이 있는 고금면은 2007년 연륙교인 고금대교가 놓이기 전까지 고금도라는 ‘섬’으로 더 친숙했다. 완도읍 소재지인 완도 본섬을 제외하면 가장 크고 넓은 섬이다.

고금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384년 고려 우왕때 천씨(千氏)가 최초로 거주하면서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정마을은 그보다 한참 뒤인 1650년대 초 조선시대 진주강씨와 이천서씨가 이주해 살며 마을을 형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은 고금면에서도 가장 큰 마을로, 대촌을 이루게 됐다.

상정마을은 지형이 아홉구미로 나뉘어 불린다고 해서 상구미라 했으나 아홉구미의 송림(松林)이 울창하고 마을 앞 높은 곳에 정자나무가 있어 상정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을을 둘러싼 오래된 소나무가 제법 운치가 있다. 송림이 우거진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갈매기의 형태를 닮고 있다.

고금도가 그렇듯 상정마을 역시 리아스식 해안과 다도해로 둘러싸인 내해적 특성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다. 마을 앞 너른 바다는 외파의 영향이 비교적 적고 양식어장을 개발하기 적합한 입지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어 마을 주민들의 생업 또한 양식이다.

마을을 둘러싼 3면이 바다로, 주민들도 주로 굴과 매생이, 미역을 양식하고 있다. 상정마을에서 키워낸 굴은 타 지역 굴과 다르다. 껍질이 두껍고 단단하다. 그러면서도 속 알맹이는 씨알이 굵어 식감이 뛰어나고 굴의 향도 진하다. 청정해역에서 키워낸 매생이와 미역 등 해조류도 역시 품질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마을 규모가 큰 데다, 마을을 둘러싼 바다도 넓은 탓인지 주민들의 품도 넓다. 다른 어촌마을과 달리 낯선 이방인을 대할 때도 강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마을의 특성 덕분에 귀어를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현재까지 10여 가구가 귀어해 바다를 터전 삶아 살아가는 중이다. 귀어를 하려는 사람들을 수용하는 것에 굉장히 적극적이다. 고령화되고 있는 마을에 생기를 불어 넣어줄 젊은 청년 어업인이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마을 주민들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여기에 고금도에서도 가장 큰 마을로 역사와 탄탄한 조직력을 자랑하고 있는 만큼 상정마을은 뛰어난 문화유산도 품고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고금도는 조선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해전을 준비한 곳이다. 상정마을에는 임진왜란 때 군비를 모금하기 위해 창단됐다고 알려진 농악단이 있다. 상정마을에서 전해져오는 농악은 일명 ‘걸궁농악’이라고도 불린다. 당시 이순신 장군이 고금면 덕동리에 전라우수영을 설치했을 때 군비를 모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농악대가 멋드러진 가락으로 굿을 치면서 마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주민들로부터 헌금을 받았다. 이렇게 받은 헌금으로 군대와 의병들을 지원하는 비용으로 사용했다는 유래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후 이 농악은 매년 음력 정월 초 3일이면 동네사람들의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인 헌식제를 모시면서 펼치는 굿으로 이어져왔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모여 술과 음식을 나눴고, 웃고 즐기고 춤추는 등 온 동네가 하나 되는 전통문화로 자리 잡았다.

한때는 주민들이 이 걸궁농악으로 완도군 대표 선수로 출전해 전라남도 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다만, 아쉽게도 마을 전통 농악을 계승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젊은 청년들이 적고 생업이 바빠지면서 걸궁농악을 계승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상정마을과 걸궁농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마을 인근의 ‘묘당도 이충무공유적’을 한층 더 흥미롭게 둘러볼 수 있게 된다.

사적 제114호인 묘당도는 고금도에 딸린 섬으로 정유재란의 마지막 해인 1598년(선조 31) 2월 18일 이순신이 수군 8000여명을 이끌고 고하도(高下島)로부터 옮겨 진을 친 곳이다. 그 해 7월 16일 명나라의 원병으로 수군도독 진린(陳璘)이 병선 500여척으로 고금도에 도착, 묘당도에 진을 치고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전선을 이뤄 왜적의 침범을 막아냈던 유적지다.

/박기웅 기자 pboxer@kwangju.co.kr



찾아오시는 길

▶ 승용차

서울 → 경부고속도로 → 서천공주고속도로 → 서해안고속도로 → 서영암TG → 강진무위사IC → 강진군 → 고금면 → 상정마을

▶ 고속버스

센트럴시티터미널(호남) → 강진버스여객터미널(4시간30분) → 강진버스여객터미널정류장 도보 이동(2분) → 강진버스여객터미널 승차 강진-당목-고금-강진 행(48분) → 고금여객터미널정류장 하차 → 고금여객터미널정류장 고금-상정행 승차(6분) → 상정리정류장 하차 → 상정마을

▶ 열차

용산역KTX → 광주송정역(1시간32분) → 송정역 정류장 좌석 02번 탑승 → 광천터미널 정류장(40분) → 유스퀘어광주버스터미널 → 고금시외버스정류장(2시간) → 고금시외버스터미널 → 상정리 정류장 하차 → 상정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