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김과 함께 전복은 당인마을의 주요 생산물이다. 전복 양식에 쓰이는 도구를 세척하고 있는 어민.

완도군 군외면 당인마을은 ‘쌀 서말을 못 먹고 시집간다’던 가난한 동네였다. 바다로 둘러싸인 이곳은 완도에서 가장 지형이 험준하고 교통이 불편한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완도읍면에서 나는 물김은 모두 이곳 위판장을 거쳐 가공 공장으로 향한다. 당인마을을 떠난 물김은 마른김, 자반 등으로 변신해 우리네 식탁에 오른다. 물김을 수확하는 어민들의 손이 분주해지면, 물김이 가득 담긴 마대를 옮기는 당인 마을의 크레인도 덩달아 바빠진다.

물김을 품고 있는 바다는 이곳 주민들의 삶을 바꾼 소중한 자원이다. 하지만 위대한 자연은 때로는 시련을 준다. 지난 10월초 태풍 콩레이가 지나가면서 한참 분주해야 할 시기에 마을 주민들은 큰 피해를 보고 잠시 손을 놓고 있어야 했다.

김생옥(63) 당인마을 어촌계장은 “태풍이 와야 바다가 뒤집히면서 쟁기질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태풍은 좋은 태풍이지만 시기가 좋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김 가격도 좋았는데 작황도 안 좋다고 하고 걱정이 많다”고 언급했다.

시련의 가을을 보냈지만 마을 주민들은 결실의 겨울을 맞기 위해 바쁘게 바다를 오가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시련을 이겨내고 미래를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당인 마을의 역사가 있다.

일제강점기 때 항일 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던 곳이 완도다. 그리고 앞서 가리포민란의 선봉에 섰던 허사겸이 바로 당인리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1882년 가리포진(완도)에 부임한 ‘첨사’(僉使·고을 수령) 이상돈의 수탈과 학정에 주민들이 분노가 극에 달았고, 1883년(계미년) 11월 18일 자시(子時) 마을 이장이었던 허사겸이 죽음을 각오하고 허공에 나팔을 불었다.

고요한 바다 위로 퍼져나간 나팔 소리는 ‘계미민요(癸未民擾)’의 불을 지피는 신호였다. 허사겸을 비롯한 농민들은 관아로 진입, 첨사를 포박해 완도에서 추방했다. 또 억울하게 옥고를 치르고 있던 백성들도 풀어줬다.

이후 향도청(鄕道廳)이 설치되면서 민심이 안정됐고, 향촌 자치를 실시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하지만 많은 이를 위해 앞장섰던 허사겸은 민란의 주동자로 지목되면서 관군에 의해 강진 병영으로 끌려갔고, 27세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지난 2008년 허사겸 선생 등 8명의 뜻을 기려 위패가 모셔진 창의사(倡義祠)가 세워졌고, 매년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수탈과 항쟁의 역사를 안고 있던 가난한 마을을 부촌으로 변화시킨 것은 바다, 물김이다. 부지런한 손길로 청정바다의 향에 햇살을 입힌 게 ‘성공 전략’이다.

김 계장은 “다른 지역에 비해 이쪽 지역의 물김은 햇빛을 많이 본다. 부표를 뒤집으면서 김발을 노출한다. 한번 치는데 20~24일 정도 걸리는 데 햇볕에 노출이 되면 맛이 다르다. 정성이 더해지면서 질이 좋고, 빛깔도 다르다”고 이곳 물김에 관해 이야기했다.

물김은 떠났던 이들의 발길도 잡았다. 어려워진 경제 상황 속, 마을 주민들의 노령화에 따라 고향을 떠났던 젊은이들이 마을로 돌아오고 있다. 귀어 행렬이 이어지면서 점점 젊은 마을이 되어가고 있다.

김 계장은 “바다에 나가는 마을 최고령자가 77세다. 75세 이상도 대여섯 명 정도 되는데 75세는 정년이라고 봐야 한다. 아버지들이 이제 일하기 힘들어지는 나이가 되니까 고향을 떠났던 자식들이 돌아오고 있다. 2~3년 정도 됐지만 귀어 인구가 30명 정도 된다”며 “후배 양성을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발전되고 미래가 있는 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소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인마을에는 물김이라는 대표 자원이 있지만, 이는 자연적인 요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또 다른 소득 자원도 필요하다. 당인마을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관광이다.

당인마을의 항은 뛰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지금까지는 생활의 터전을 오가는 곳에 그쳤지만 좋은 관광 자원으로 손색이 없다. 마을 앞뒤로 빙 둘러 있는 바다의 운치도 좋다.

근처에 둘러볼 곳도 많다. 8㎞ 거리에 완도 수목원이 위치했고, 차로 불과 3분 거리에는 청해포구 드라마 세트장이 있다. ‘해상왕’ 장보고의 일대기를 담은 특별기획드라마 ‘해신’이 촬영된 곳으로, 주말에는 다양한 체험행사도 펼쳐진다.

천혜의 환경에 정성 가득한 질 좋은 물김 그리고 의미있는 역사까지 품고 있는 곳. 당인마을이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김여울 기자 wool@kwangju.co.kr

/사진=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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