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꽃은 투표다. 자신의 의사를 직접 표시하든 아니면 대신 행사할 대표자를 뽑든 그 수단은 투표이며, 다수 표를 얻은 의견 또는 후보가 승리한다. 다수가 전체의 얼마여야 하는가는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동일 득표에 관한 특별한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원칙적으로 승부의 가장 작은 표 차이는 한 표다. 그 승부를 가르는 것은 대부분 한 표보다 훨씬 많은 표차이지만 때로는 한 표 차이가 되기도 한다.

이런 ‘기적’이라 할 만한 한 표 차이 승부는 현실적으로도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지방선거에서 한 표 차이로 운명이 갈린 경우는 열세 번이었다고 한다. 이번 법관 회의에서 사법 농단에 관여한 고위 법관에 대한 탄핵 요청 결의안 통과도 한 표 차이였다.

그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민주 사회에서 최소한 자신의 능력만큼은 대우받는 것은, 그러길 원하는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하는 미덕이며,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미덕이 지켜지는 정상적인 상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건만 허락했다면 무탈하게 맡은 일을 잘 처리하여 능력 있다고 평가 받고 좋은 인품으로 앞날이 유망한 법관이, 삼권 중 가장 취약한 사법권을 지킨다는 대의 명분 아래, 정도를 걷기 보다는 쉬운 길(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더 어려운’ 가시밭길이 아니었을까?)을 선택한 것이 결국 사법 농단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번 사법 농단의 대의명분은 사법부를 지킨다는 것이었다.

사법부의 구성원들인 법관이 신분에 관한 한 가장 강력하게 보호 받음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독립성이 취약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사법부의 민주적 정당성이 행정부나 입법부의 민주적 정당성과 비교할 때 가장 취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행정부나 입법부는 국민이 직접 선택한 권력임에 비해 사법부는 국민이 직접 선택한 그 권력으로부터 선택 받은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민으로부터 직접 정당성을 부여 받는 것, 즉 고위 법관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국민이 고위 법관을 직접 선출하게 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사법권을 지키는 올바른 방법이지 이번 사법 농단은 결코 사법권을 지키는 올바른 방법이 될 수 없다.

고위 법관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는 현재 상황에서, ‘과연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하기나 할까?’라는 회의가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법부는 최근 법관 회의에서 사법 농단에 관여한 고위 법관들에 대하여 탄핵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가결하여 사법부의 신뢰 회복을 위한 자정 노력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결과가 과연 사법부의 신뢰 회복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필자의 사견으로는 적어도 이 결의안이 불통과되었으면 직면할 최악의 상황은 면하게 했으며, 국민의 사법권에 대한 신뢰 회복의 불씨를 되살리는 단초는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은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오늘날에도 우리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금과옥조 중의 하나가 아닐까?

이번 법관회의 105명의 참석자 중에서 찬성표를 던진 53명 중 누군가의 ‘한 표’가 이번 투표의 결과를, 사법 농단에 관여한 고위 법관에 대한 탄핵 요청 결의안 불통과에서 통과로 뒤집었다. 이 한 표의 ‘기적’이 여기서 멈추지 않고, 비록 지난할지라도 더 나아가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기적을 가져오기를 바라는 사람이 비단 필자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