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보다//…//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 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서정주 작 ‘국화 옆에서’ 중에서>

오천만 우리 국민의 애송시가 입가에 맴도는 계절이다. 가을이면 전국이 국향으로 가득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국화축제가 도처에서 열리는 시절이기도 하다. 가까이로는 광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중외공원에도 다양한 형태의 국화분에 형형색색의 꽃이 만발하고 있는데, 정말로 국화꽃을 피우기까지 직원들이 번갈아가며 물주면서 얼마나 공들여야 했는지를 알기에 이 가을 국화가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중국 청나라 시기의 화가 이선(1686~1762)의 ‘분국(盆菊)’은 드물게 화분에 심은 국화꽃을 그린 그림이다. 문인들이 즐겨 그린 매난국죽(梅蘭菊竹)의 사군자(四君子) 중 하나인 국화는 괴석 사이에서 피어있거나 바위와 풀들을 함께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이 그림은 화분에 국화를 키우는 요즘 사람들의 작품인양 다분히 현대적인 감각이다. 홀로 서지 못하는 대국의 줄기가 넘어지지 않게 받침대를 세워 단단히 고정시키고 줄기를 띠로 같이 묶어준 모습을 보니 분방한 필치 속 섬세함이 돋보인다.

사군자가 그림의 소재로 등장한 것은 중국 시문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특히 매난국죽이 갖는 식물적 속성이 학문에서 높은 경지에 이르고 인격적으로 깊은 수양을 쌓아 학문과 덕망이 본보기가 되는 사람인 군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과 일치하기 때문에 옛 선비들은 사군자를 칭송하며 글이나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그 가운데 국화는 가을 된서리 속에서도 고상한 꽃을 피우며 마음 속 깊이 스며드는 깨끗한 향기로 선비의 정신을 맑고 또렷하게 해주어 선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모든 꽃들이 다투어 아름다움을 뽐내는 시절을 침묵으로 견뎌낸 국화와 함께여서인지 늦가을 풍경이 더욱 그윽하게 다가온다.

<광주비엔날레 정책기획실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