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말복을 기다렸던 것은 올해가 처음인 것 같다. 말복이 지나면 폭염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더위가 완전히 지났다고 여겨도 될 만큼 조석으로 공기가 달라지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 여름의 끝’을 대략 말복 즈음으로 금 긋고 싶은 간절한 마음도 더해서 말이다.

말복 즈음 복달임으로는 뜨거운 보양식보다는 시원한 수박이 제격이리라. 올해는 극심한 무더위에 수박작황이 좋지 않아 수박 값도 올라 금수박이라 하지만 시원한 수박 한 입에 저만치 더위가 물러났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김호석 작가(1957~ )의 ‘수박씨 뱉고 싶은 날’(1997년 작)은 어린 시절 온 가족이 모여 신문지 깔고 수박 한 통을 썰어 먹었던 기억이 떠올려지는 작품이다. 요즘은 수박을 큐브처럼 예쁘게 깍둑썰기 하거나 스틱으로 잘라서 접시에 얌전히 담아내어 포크로 찍어 우아하게 먹지만, 우리 어린 시절만 해도 수박 한통을 반으로 쫙 갈라 부채꼴로 여러 등분해서 각자 능력만큼 몰입해서 먹었었다.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수박 먹는 장면도 이제는 어느덧 지나간 시절의 풍속처럼 아련하게 느껴진다.

김호석작가는 역사화, 역사인물화, 농촌풍경화, 가족화, 동물화 등을 통해 우리 시대의 정신과 삶의 모습을 다양하게 형상화해오고 있는데 특히 가족화 시리즈는 보는 이에게 공감과 웃음을 안겨준다. 아기의 단잠, 딸의 귀지를 시원하게 파주는 엄마, 엄마의 새치머리를 뽑아주는 아들, 미운 일곱 살의 개구진 아이모습 등 그대로 멈추었으면 좋을 것 같은 가족의 소소한 일상과 순간을 인간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은 그림들을 그렸다. 폭염에 지친 날 슬며시 그의 그림을 꺼내보게 되는 것도 그래서인지 모른다.

<광주비엔날레정책실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