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이 국권을 잃어가던 때, 영광지역 많은 유생(儒生) 들이 붓대신 칼을 들었다. 또한 수많은 지역 민초들이 의병으로 나서 일본제국주의 군·경과 싸웠다. 그러나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열악한 무기를 들고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던 이들의 활동상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져 있다, 이름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기도 하다. 그중에서 영광 대마면 출신 대극(大克) 이순식(李淳植)(1875~1909) 의병장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신문사에 거의(擧義) 격문 보내=“장성과 고창과 영광과 거창 등지에서 의병을 모으는데 대장은 기명린이요 중군장은 리진사요 좌익장은 김유성이요 우익장은 리대극이요 후군장은 김준삼이요 군량관은 류화국이요 정탐관은 안락삼과 명치삼이라 하며…”

대한매일신보 1907년 11월 16일자에 실린 내용이다. 그해 10월 30일(음력 9월 24일) 영광을 비롯한 나주와 장성 등 호남지역 의병들은 대규모 연합부대를 꾸린다. 바로 ‘호남창의 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이다. 결성장소는 장성 수연산 산자락에 있는 석수암(石水菴)이라는 암자였다. 이때 의병들은 대한매일신보에 격문을 보내 거의(擧義)했음을 널리 천명했다. 이후 호남의병진은 문수사와 법성포, 고창성 등지에서 일본 군경을 상대로 큰 전과를 올렸다.

호남의병을 이끌던 성재 기삼연(1851~1908) 대장은 맹활약을 펼치는 대극 이순식 의병장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그대의 용맹은 하늘을 나는 장수로다. 풍우(風雨)와 같이 휘몰아치고 번개와 같이 날쌔니 내가 만약 그대와 같은 용장(勇將)을 얻지 못하였다면 어찌 이와 같이 대승을 얻을 수가 있겠는가.”

의병장 고광순과 고제량, 이대극의 의로운 삶을 1946년에 기록한 ‘삼의사(三義士)행장’에서도 그에 대한 묘사를 찾아볼 수 있다.

“…의병을 일으켜 여러 해 동안에 몸소 군사들 앞에 서서 용감하게 싸워 번갯불과 같이 동으로 번쩍이고 서로 번쩍이니 적이 그 위엄에 떨어 감히 정면으로 공격해 오지 못했다. 이 어찌 용이한 일이냐? 그 우뚝한 의기와 늠름한 절개는 천추에 영원히 썩지 않을 것이다.”(영광문화원 펴냄 ‘영광의 인물’ 중)

이순식 의병장은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나마 그의 발자취를 알 수 있는 것은 2016년에 영광문화원에서 ‘영광군 인물사 제1집’으로 구한말 영광의병장을 비롯한 지역 선각자들의 삶을 정리해 ‘근현대 영광군 인물사-영광의 인물’을 펴낸 덕분이다. 의병장들의 행적은 스스로가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좀처럼 일생을 알기 어렵다. ‘조선 폭도토벌지’와 같은 일본 측 기록과 당시 신문기록, 개인문집, 행장 등에서 일일이 찾아내 퍼즐처럼 짜 맞춰야 한다.

정택근(64) 영광문화원 지역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대극 이순식 의병장은 영광에서 가장 빠르게 의병을 일으켰다. 영광의 의병활동은 3·1운동,일제하 민족운동으로 맥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영광의 인물’에 실린 내용을 중심으로 이순식 의병장의 삶의 궤적을 살펴본다.

대한매일신보(1907년 12월 11일)에 실린 영광의병 활동상.

◇호남연합 의병진 중책맡아 맹활약 펼쳐=이순식 의병장은 1875년 영광군 대마면 남산리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함풍(咸豊)이며 호는 대극이다. ‘일본을 크게(大) 이길 수 있다(克)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본명보다 이대극 의병장으로 널리 불린다. 어려서부터 유학보다는 무술연마에 뜻을 두어 활쏘기와 말타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1905년 11월, 일본이 대한제국과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면서 외교권을 박탈하자 그는 이듬해 봄, 영광군 대마면 마치(馬峙)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당시 31살 나이였다. 같은 영광 출신 후은(後隱) 김용구(1861~1918) 의병장이 동지 규합을 위해 조직한 ‘일심계’(一心契)에도 참여했다.

1907년 여름, 기삼연 선생이 장성에서 거의(擧義)했다. 그 소식을 들은 이대극 의병장은 9월에 의병 100명을 이끌고 고창 문수사에 진을 치고 있던 기삼연을 찾아갔다. 의병들은 기삼연을 대장(맹주)으로 추대했다. 그리고 후은 김용구 선생은 도통령(都統領), 이대극은 무기를 관리하는 중책인 도포장겸 군기감(監器)을 맡았다.

호남의병진은 군사훈련이 부족하고 무기마저 열악했기 때문에 전투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포수와 전직 군인들을 모았다. 특히 각각 독립적으로 활동하다가(分陣), 필요에 따라 협력체계로(合陣) 전환했다. 이대극 의병부대는 법성포와 무장, 고창, 장성, 영광 등지에서 일본 군경을 공격해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08년 2월, 대장 기삼연이 일본군에 잡히자 이대극은 회맹소 선봉장 김준과 함께 구출작전을 꾀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기삼연의 피살후 그는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재편성했다. 선봉장에 이백겸, 좌익장 김남수, 우익장 김관섭, 포장 유자성, 후군장 이화삼, 군사참모 봉계철·정진옥·주현숙·주만옥으로 꾸렸다.

특히 그는 의병진의 전술을 대규모 병력으로 전면 공격하던 기존 방식을 벗어나 기습하고 빠지는 유격전술로 바꾸었다. 1908년에 17차례 이상, 1909년에 12차례 이상 일본 군경과 교전했다.

그는 1909년 3월 3일에 영광군 홍농읍 월평리에서 세상을 떠난다. 불과 34살의 한창 나이였다. 죽음에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일본이 내건 현상금에 눈이 먼 의병 배신자가 암살했다는 설이고, 또 하나는 정대인·대홍 형제 의병장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설이다. 후자는 일본경찰 보고서에 남아있는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다. 두 사람은 4개월 후에 박포대 의병장에 의해 처형됐다. 청춘을 불살라 3년간 일본 군경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용장 의병장은 안타깝게도 동족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이대극 의병장이 세상을 떠나자 후군장 이화삼(1866~1910) 의병장이 부대를 수습해 항전을 이어갔다.

◇지역 의병 활동상 알리는 선양사업 추진해야= 출생지인 영광군 대마면 남산리를 찾아가봐도 이대극 의병장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한 세기가 흐르다 보니 주민들도 생가 터를 알지 못한다. 마을에서 멀지않은 죽동마을 송죽1구 뒤편 함풍 이씨 제실 옆에 옛 무덤자리만 남아있다. 마을초입에 ‘애국지사 이대극 선생묘 입구’라는 까만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대극 의병장은 슬하에 1남2녀를 뒀다. 외아들 이종한은 선친의 원한을 갚기 위해 중국으로 떠났으나 해방이후 소식이 끊겼다. 큰딸(이순례)에게서 난 외손자 송방식(81·전 신정신협 이사장)씨는 지난 2016년 ‘나는 항일의병장 후손이다’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썼다.

외손의 3년간에 걸친 노력에 따라 1990년에야 정부는 이대극 의병장의 공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후 화장해 국립 현충원 충현당으로 옮겼다. 영광은 이대극과 후은 김용구를 비롯해 많은 의병장을 배출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따라서 앞으로 지역 초·중·고에서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려 한 ‘영광의병’들의 활동상을 교육하고, 이들의 발자취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기념관 건립도 절실하다.

외손 송방식씨는 “어려서 어머니 손을 잡고 법성포에서 남산리까지 걸어가 산소를 참배했다. 외할아버지가 장사라고 말을 들었는데 이장을 할 때 보니 정말 기골이 장대했다. 앞으로 의병장 외할아버지를 알릴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영광=이종윤 기자 jyle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