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간 석 달 치 비가 쏟아진 일본 전역 곳곳에서 그로 인한 피해 소식이 엄청나다고 한다. 최근 태풍 쁘라삐룬이 우리나라를 빗겨가 안심하는 사이에 태풍 후 밀려든 장마전선 영향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물난리를 겪는 일본발 뉴스를 접하면서 방재 시스템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인 일본도 자연 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인 것을 보니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인간의 힘으로 못할 일 없을 것 같은 초지능사회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은 여전히 미미하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진 폭우를 만났었던 것일까. 일본의 대표적인 우키요에(浮世繪) 판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작품 ‘오하시아타케의 소나기’(1857년 작)는 굵은 비가 휘몰아치고 있는 다리를 뛰어가는 사람들의 급한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하늘엔 비를 잔뜩 머금고 있는 먹구름이 드리워져있고 좀처럼 멈출 것 같지 않은 빗줄기가 화면에 가득해 그림을 감상하는 순간도 한없이 긴장되고 발걸음이 절로 동동거려진다.

우키요에는 주로 에도시대 서민들의 일상생활 풍속을 그린 그림이지만 히로시게는 풍경 판화에서 독자적인 화풍을 성취했던 작가이다. 히로시게는 예나 지금이나 여행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에게 풍경판화를 통해 시각적인 자료를 제공해주면서 만족감을 주었다고 한다. 특히 그는 비, 안개, 눈, 달빛 등 기상 현상을 그림 속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 덕분에 그의 판화에서 기후는 화면의 분위기를 이끄는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했다.

우키요에는 오랫동안 원근법과 입체감, 정확하고도 아름다운 형태에만 집중했던 유럽미술, 그 중에서도 인상파 거장들에게 충격과 신선한 자극을 주었는데 특히 빈센트 반 고흐는 우키요에 판화를 4백 여 점이 넘게 수집했고 이를 따라 그리기도 했다. 히로시게의 작품 ‘소나기’를 같은 구도로 모사한 고흐의 ‘일본풍:빗 속의 다리’를 보면 고흐가 얼마만큼 우키요에에 열광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광주비엔날레 정책기획실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