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화 사업중인 사당(도산사).

“지방의 역사가 없으면 국가와 민족의 역사도 없다!” 곡성 옥과면에서 오랫동안 월파 유팽로(1554~1592) 선생을 연구해온 지역사 연구가 김형수 씨는 잊혀진 지방의 역사를 강조한다. 월파는 1592년 왜군이 침략해오자 조선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고, 곡창지대인 전라도로 밀려오는 왜군들을 막아냈다. ‘전라도 천년의 해’를 맞아 월파 유팽로 의병장의 의로운 삶과 구국정신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금산성 전투에서 대장 고경명과 함께 순절=1592년 7월 10일(음력), 조선 관군·의병군과 왜군이 금산성밖 와운평에서 처절한 혈전을 벌인다. 제1차 금산성 전투이다. 제봉 고경명 선생이 이끄는 호남 연합의병 6000여명은 6월 11일 담양을 출발해 여산과 은진, 연산현을 거쳐 북상하다가 왜군의 금산 집결 소식을 접했다. 왜군의 의도를 간파한 의병군은 급히 머리를 돌려 방어사 곽영과 합세해 금산성 왜군 본진을 공격했다. 그러나 선봉장인 영암 군수 김성헌이 먼저 도망치자 관군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 여파로 의병군마저 흩어졌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수정실록에는 제봉 고경명과 월파 유팽로의 비장한 최후의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종사관 학유(學諭) 유팽로는 말이 건장해서 먼저 나가다가 그의 종에게 묻기를 ‘대장은 모면하였는가?’ 하니, 아직 못 나왔다고 하자, 팽로가 급히 말을 채찍질하여 어지러운 군사들 속으로 되돌아 들어갔다. 이에 경명이 돌아보며 말하기를 ‘나는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그대는 말을 달려 빠져나가라.’ 하였다. 팽로가 말하기를, ‘어떻게 차마 대장을 버리고 살기를 구하겠는가?’ 하고 드디어 안영과 함께 경명을 보호하다가 적중에서 함께 전사하고…. ”

월파 유팽로 선생이 의병의 기치를 든지 79일만의 일이었다. 그의 나이 39세였다.

◇탄생지 합강마을에 성역화 사업 추진=조원래 순천대 명예교수는 ‘추성창의와 유팽로의 의병활동’ 논문에서 호남연합 의병의 제1차 금산성 전투에 대해 ▲전쟁이 발발한 이후 일본군의 주진지를 조선측에서 선제공격한 최초의 사례 ▲의병의 주역들이 모두 순절한 초유의 사건 ▲임진왜란 의병사에서 조선의 의병정신을 가장 충격적으로 떨친 최초의 사례 ▲의병장의 절의가 무엇인가를 의병지도층이 집단적으로 보여준 초유의 혈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곡성군 옥과면 합강리는 월파가 태어난 마을이다. 옥과천이 섬진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해 합강(合江)마을이라고 한다.

마을을 찾았을 때 멀리서도 공사중인 월파 유팽로 선생 성역화 사업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곡성군이 국비 23억원을 투입해 2017년 6월 착공해 오는 8월말 완공목표로 ‘임란 최초 의병장 유팽로 역사촌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당 도산사(道山祀)를 비롯해 내삼문과 제기고(祭器庫)를 함께 새로 짓는다. 외삼문은 나중에 추가로 세울 계획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유팽로 선생의 활동상을 그린 벽화가 눈에 띈다. 월파 유팽로장군 숭모회장 박대하 회장은 “벽화는 의병창의와 의마(義馬), 옥출산 훈련, 금산전투 등 6개 그림으로 구성돼 있다. 주민들이 2006년에 ‘참좋은 마을만들기’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받은 상금(1500만원)으로 월파 장군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그렸다”고 말했다.

◇의병행사 열고 청소년 순례코스화 해야=월파 유팽로 선생은 임진왜란때 전국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인물이다. 1554년 2월 합강마을에서 태어난 월파는 26세(1579년)에 사마시에 합격했고, 35세(1588년)에 식년문과에 급제했다. 이듬해인 1589년(선조 22년)에 홍문관 부정자(정8품)로 발령나 사가독서(賜暇讀書·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의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1590년 부친(유경안)이 세상을 떠나면서 벼슬을 내려놓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한다.

3년상을 치른 월파는 1592년 4월 홍문관 박사(정 7품)으로 다시 복직한다. 임진왜란 발발이 임박한 그때, 그는 선조에게 3차례 상소문을 올린다. 1차 상소는 왕에게 국가재정의 폐단을 시정할 계책을 제시했는데 큰 반발을 불러일으켜 성균관 학위(종 9품)으로 좌천당한다. 그래도 그는 2차, 3차 상소문을 올린다. 3차 상소는 남쪽 섬오랑캐(일본)와 북쪽 야인(여진족) 침략을 막기 위해 군비 준비를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과거시험을 준비할때와 3년간 시묘살이를 할 때 꾸준히 병서(兵書)를 읽으면서 전쟁에 대비했다. 1580년에 옥과지역 농법을 정리한 농업기술보급서 ‘농가설’(農家說)을 비롯해 ‘유가설’(儒家說)과 ‘병가설’(兵家說)을 잇따라 집필했다. ‘병서를 읽으면서 느낀 시’를 쓰기도 했다. 합강마을 뒷산에 있는 옥출산성에 무기와 식량, 의복 등을 비축했다고 한다.

그는 임진왜란이 터지자 왕을 수행해 피난을 떠나는 대신 남쪽으로 향한다. 왜군이 부산진에 도착한 날로부터 6일후인 4월 20일 순창 대동산에서 500여명의 의병을 규합한다. 이때 ‘전라도의병 진동(鎭東)장군 유팽로’라고 쓴 창의 깃발을 높이 세웠다. 이는 망우당 곽재우의기병(4월 22일)보다 이틀이 앞선다. 5월 11일에는 임실 갈담역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다. 이 역시 곽재우 의병의 의령 정진전투(5월 26일)보다 15일이나 앞선다.

◇호남의병, 임진왜란 흐름 뒤바꿔=월파는 4월 30일 호남최초 의병격문인 ‘통제가문’(通諸家文)을 작성한다. 이어 5월 2일에 의병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격도내문’을 써서 호남 각지에 보낸다. 이종사촌형인 남원 양대박과 안영을 만나는 등 모병활동을 펼쳐 의병군의 세를 불린다. 5월 17일에는 고경명 선생에게 호남연합 의병을 일으킬 것을 제안한다.

5월 23일, 제봉 고경명과 유팽로, 양대박 의병장이 담양에서 한자리에 모인다. 임진왜란 최대 규모의 호남연합 의병군의 기틀을 마련한 유명한 ‘담양회맹’(會盟)이다. 고경명을 의병장에 추대하고, 좌부장은 유팽로, 우부장은 양대박 장군이 맡았다. 6000여명에 달하는 호남연합 의병군은 7월 10일 금산전투에서 패한다. 하지만 월파 유팽로 장군 등 호남 의병의 희생은 임진왜란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지역사 연구가 김형수 씨는 “왜군들이 전라도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했고, 최경회 의병장이 표신(表信)으로 삼아 제2의 호남연합의병을 일으켰다”면서 “잊혀진 구국의 의병장 월파 유팽로 장군 성역화 사업이 끝나면 ‘의병의 날’ 행사를 옥과면에서 갖고, 그곳을 청소년 순례코스로 만들었으면 한다. 또 전남도 문화재자료 25호인 정열각이 한등급 격상됐으면 좋겠다. 옥과 면민의 한사람으로서 바람이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곡성=김계중 기자 kj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