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인 박종화는 1박 2일 동안 황석영의 집에서 노래극 ‘넋풀이’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끝으로 전체 녹음이 끝났다고 그의 책 ‘서예와 함께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밝힌다.

연주와 가창, 시낭송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문화운동주체들에 의해 완성됐다는 것이다. 덤으로 개 짓는 소리까지 불청객으로 참여하게 되었다고 하니 녹음할 당시의 정황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노래굿 ‘넋풀이’의 녹음테이프<사진>는 어떻게 배포됐을까. 무엇보다 감시망을 피해야 하고 다량을 복사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테이프의 표지를 인쇄하지도 못한 채 타이프로 쳐서 표지와 가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황석영이 화가 홍성담과 함께 서울로 가지고 갔다. 테이프는 1982년 기독청년협의회 명의로 2000개가 복사돼 배포됐다고 한다.

“첫 무대 공연은 1983년, 전국 YWCA 전국대회에서 놀이패 ‘신명’의 윤만식의 연출로 광주 YWCA 회원들이 선보였고 큰 호응을 얻었다. 1983년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온 작곡가 김종률은 서울의 거리를 걷다가 자신이 작곡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처음 들었다고 한다.”(정유하, 『그래도 우리는 노래한다』한울, 2017)

올해 ‘임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와 세계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관현악곡 서곡의 작곡 위촉을 맡은 황호준(47) 작곡가는 당시의 상황을 밝힌 적이 있다. 황 작곡가는 소설가 황석영 씨의 아들이다. 그는 당시 초등학생 뇌리에 박힌 장면들은 어제의 일처럼 또렷했다.

황 작곡가는 “운암동 2층 집에서 노래 녹음을 하던 날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며 “평소 아버지는 2층 집필실에서 글을 쓰셨는데, 그날만은 사람들을 모두 2층으로 올라오게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77년 무렵 ‘장길산’을 집필하기 위해 해남으로 가셨어요. 이후 78년 광주로 이사를 와 양림동에서 잠시 살았어요. 그리고 81년에 다시 운암동으로 이사를 했는데, 당시의 집터는 지금의 문예회관이 들어선 곳입니다.”

그는 “무거운 커튼이 쳐지고, 내부의 소음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완벽하게 ‘방음’을 한 뒤 녹음이 시작됐다”며 “노래는 장엄했고, 무언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정서 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임을 위한 행진곡’은 폭압의 시대를 뚫고 탄생했다. 영혼결혼식에 바쳐진 노래는 그렇게 광주의 아픔을 넘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노래가 되었다. 오늘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전국의 강산에 흘러 살아있는 메아리로 울려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