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올해 오월은 전시장과 5·18기념음악회, 금남로 거리와 망월동 등 여러 현장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했다. 38년이 흘러 한 세대를 훌쩍 넘었지만 오늘도 오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명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광주의 서사는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80년 오월 현장을 지나왔던 광주의 작가들에게도 오월은 항상 눈앞에 있는 것 같다. 80년대부터 민중미술운동에 몸담고 민중들의 삶과 세상의 흐름,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아왔던 하성흡작가(1962년∼ )에게도 오월 광주는 언제나 시대의 절정이자, 끝나지 않은 질문이다.

작품 ‘1980년 5월21일 발포’는 작가가 지난해 작업했던 광주항쟁도이다. 지난해에 와서야 금남로 전일 빌딩 총탄 흔적 조사가 이루어지는 등 헬기 사격이 밝혀진 것은 근자의 일이지만 작가는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시작되기 직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다.

전일 빌딩 앞에서 공수부대와 시민, 학생이 대치하고 있는 긴장된 상황을 조선시대 전통회화 기법의 하나인 부감법(俯瞰法)을 사용해 당시 현장을 한눈에 내려다보듯 실감나게 파악할 수 있게 했다. 무등산과 금남로 건물들, 옛 전남도청의 모습이 실감나고 곳곳에서 격전을 치렀을 것으로 보이는 자욱한 검은 연기와 인물들의 행렬은 지금 보아도 비장하다.

“언젠가는 광주항쟁도를 전통 수묵화 기법을 활용하여 사실적으로 그리고 싶었다”는 작가는 이를 위해 80년 광주항쟁 열흘간의 투쟁일지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과 각종 보고서와 자료 등을 참고하여 그때 당시의 상황을 재현했다. 일찍이 “튼튼한 소묘력과 전통 형식의 재인식으로 수묵작업을 일구었다”는 평가를 받아오고 있는 작가는 1990년 전남대 사범대 1호관에 ‘광주민중항쟁도’ 벽화를 그렸고, 그동안 사라졌던 벽화를 지난해 복원하는 데에도 참여하는 등 최근에는 수묵역사화를 비롯해 소쇄원 48영 등 전통회화의 감명을 작품에 담아오고 있다.

〈광주비엔날레재단 정책기획실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