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네팔여행 이후 10년이 훨씬 지나 또 다시 네팔을 찾았다. 그 당시의 목적지도 안나푸르나였고 이번 여행도 역시 안나푸르나다. 네팔을 찾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수도 ‘카투만두’에 도착해 도심에서 가깝게 위치하고 있는 관광지를 몇 개 구경한 후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위해 ‘포카라’라는 지역으로 이동한다.

우리도 그랬다.

일상을 탈출해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모든 여정이 여행이 되는 것이지만, 행선지에 따라 컬러풀하게 다양해진다. 국내여행과 해외여행, 그리고 여행일정을 누가 결정 하느냐에 따라 배낭여행과 패키지, 편안하고 느긋한 휴양(휴식)형 여행과 여기저기를 보고 다니는 탐방형 여행…. 요즘은 현지에 가서 현지인들처럼 살다 오는 체류형 여행도 있고, 그저 자연과 벗 삼아 주구장창 걷기만 하는 배낭여행 트레킹도 있다.

여행의 목적에 따라 아주 다양한 형태의 여행이 존재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하나나 두 가지 방식을 선택해 출발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의 여행 형태다.

얼마간의 여행을 함께 했던 내 친구들은 이번처럼 다양한 경험을 한 여행은 처음이었다고들 말한다. 사실 이번 여행은 네팔 트레킹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여행단이 아니었다. 일 년 전 네팔에 만들어진 의료봉사기관 광주진료소의 일주년 기념행사에 맞춘 팀에 얹혀 간 것인데, 그림 그리는 사람들도 현지에서 벽화를 그리거나 아이들과 의미 있는 문화 행사를 함께 하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가담한 것이다.

카투만두에 도착해서 환영식에 참석하고 다음날 진료소가 있는 드무와라는 산골 마을로 이동. 간단한 행사를 치른 이후 의료팀들은 진료가 시작되었다. 의료혜택이 전무한 네팔의 산골마을에서 광주의 의사들이 무료 진료를 한다는 소식에 많은 주민들이 인산인해로 몰려들었다.

2층 건물에 마련된 진료소 각 방마다 의사들이 배치되고 환자들을 반가이 맞았다. 진료를 위해 광주에서부터 가지고 온 의료장비들이며 준비물 양이 만만치 않다. 정의와 평화, 생명을 나누는 일에 감격하였다. 봉사하는 손길은 설산의 새하얀 축복처럼 아름다웠다.

의료봉사팀들은 봉사가 끝난 후 ‘카투만두’를 거쳐 인천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트레킹 팀들도 다 함께 진료소 벽에 벽화를 그리거나 마을 아이들의 팔에 그림을 그리며 멋진 추억을 만든다. 트레킹 팀원은 11명, 그 중 반이 이른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다. 세상사 모든 게 다 어려움이 크겠지만 예술의 길은 더더욱 쉽지 않고, 난관이 도사린 길이다. 예술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중에 하나가 세상의 많은 경험일터인데, 변변한 해외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한 이들도 부지기수다.

이번 트레킹 팀들은 이렇게 꾸며졌다. 봉사와 헌신 그리고 나눔과 배려, 이 좋은 뜻들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거라 확신한다.

메세나, 기업들이 문화 예술에 대한 지원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 국가 경쟁력에 이바지하는 활동을 통칭하는 용어다. 기업이건 개인이건 예술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그들의 활동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결국에는 서로가 상생하는 좋은 일이다.

이번 여행의 형태는 이러했다. 예술을 좋아 하는 사람들이 예술가를 지원해서 함께 여행하고 현장에서 제작한 스케치들을 나눠 갖는 그런 단순한 형태다. 어느 날 문득 만나 인연이 된 미술품도 있겠지만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함께한 작품들이라면 그 의미가 훨씬 더 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토리텔링…. 최근 이 단어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대두 되지 않는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포카라’도 참으로 많이 변했다. 2005년의 포카라는 고즈넉한 시골마을과도 같았다. 거리는 비교적 한산했고 여행객을 맞는 가게들도 시골 읍내의 그것처럼 소박하기만 했었다. 꽃들이 만발하고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들은 여행자들 주변에 둘러서서 순박한 미소와 꽃과도 같은 웃음을 쏟아냈다. 바라만 봐도 기분 좋은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여전 하지만 ‘포카라’의 상가들은 새롭게 조성된 신도심의 유흥가처럼 번잡해졌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다.

나야풀에서 시작했던 2005년의 트레킹 때와 달리 훨씬 더 높은 지역, ‘힐레’라는 곳까지 짚으로 이동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첫 숙박 예정지인 ‘울레리’는 해발 2000미터 정도에 위치해 있다.

힐레에서 고라빠니를 지나 히말라야 고봉들을 조망할 수 있는 푼힐 전망대까지의 코스는 아주 쉬운 코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운동이라곤 거의 하지 않은 일행들에게 ‘울레리’까지 가는 길 3500개의 계단을 오르는 일은 죽을 맛이었다. 함께 계단을 오르는 당나귀들도 힘이 드는지 방귀를 뿡뿡 껴대며 주인이 잠시만 한눈을 팔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딴전을 피운다.

숨이 턱까지 차고 체력이 한계에 도달할 즈음 ‘울레리’의 푸른 지붕들을 본다. 그리고 ‘울레리’에서 맞는 히말라야의 석양과 밤하늘은 감동적으로 아름답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의 종착지는 푼힐(Poonhill·3193m)이다. 이곳에선 3200m 정도도 언덕이다. 이 언덕에서 안나푸르나 남봉, 마차푸차레, 다울라기리 등 8000m급의 설산들을 조망한다.

푼힐은 고라빠니의 숙소에서 30∼40분 정도를 올라가야 한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쉬고 있는데 포터로부터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우리의 일정은 내일 새벽 푼힐에 갔다가 다시 트레킹을 시작 타다빠니를 거쳐 란드룩이나 간드룩에서 숙박을 하고 3박 4일의 여정으로 포카라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우리를 싣고 갈 차량이 하필 치러진 네팔 총선 때문에 올 수가 없단다. (네팔은 총선 당일 날 모든 차량이 운행정지라고 한다.)

그래서 일행들은 일정을 4박 5일로 늘리거나 2박 3일로 줄여야 하는 두 가지 방안 중 줄이는 쪽을 선택했고, 그 결정이 있던 다음날 일찍 푼힐에 갔다가 바로 짐을 싸서 이틀 동안 올랐던 그곳에서 하루 만에 내려 와야 하는 힘든 일정을 감수해야 했다.

세상일이란 게 우리들 맘대로, 계획대로 되질 않는다. 그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가능하다면 즐겁게 생각하며 살 일이다. 얼마간이라도 세상 욕심을 내려놓으면 그곳 히말라야에서 신들의 숨결 어린 억겁만년 장엄한 침잠과 하얀 이마가 아침 햇살에 발갛게 물드는 설산 그리고 자연에 동화된 순수한 인간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접할 수 있다.

욕심을 버리면 아름답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20회

-쾰른아트페어, All About Korea(White Box, Munich, Germany)등 단체전 500여회

-조선대 평생교육원 전담교수, 한국미술협회 이사, 선과 색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