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숭어란 말이 있다. 보리 패기 시작하면 부줏머리 갯가 개숭어 폴짝 뛸 때라고 고놈들 몇 마리만 걷어다가 동네 추렴하면 마치 좋을텐데 산밭에 이제 막 약 차오르기 시작한 풋마늘 좀 뽑고 된장 퍼다가 거기에 신김치 감으면 목구멍이 다 후련 할 것 아닌가. 이 봄 황사 먼지 때문에 입맛도 꽃도 다 잃었다.

나는 요즘 남도에 꽂혀있다. 더 먼저인지 모르지만 몇 해 전부터 그쪽 걸음이 잦아졌으니 해남 답사 기행전, 수묵비엔날레, 장흥문학길 그 외 크고 작은 답사 프로그램이 그것인데 오목조목한 해안선을 따라 난 길이 이쁠 뿐아니라 재미지다.

목포, 해남, 진도, 강진, 장흥 그리고 대흥사, 미황사, 백련사,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뭍과 물이 맞닿은 공간 거기 넘나드는 맛 또한 오묘해서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 매번 코스가 반복되는데도 군소리 한마디 못하고 찐을 빼고야 마는데 그 길 가다보면 어느 한 곳 빠진 곳이 없으니 천혜의 문화관광 벨트라 할 만하다.

간만에 거기서 올해부터는 국제 수묵비엔날레가 시작돼 겹을 더한다니 ‘예술의 꽃’도 기대 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풍광 걸진 밥상 미주에 혹 했으니 밥값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기획 행사인만큼 조건이 붙기 마련 잘먹기와 잘 그려내기이다.

미션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답사 내내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이유다. 세상 그 어디에도 이런 거래(?)는 없다.

예컨대 이태리의 멋진 식당에서 파스타 시켜주고 그림 그려내라? 파리에서 푸아그라를 우아하게 접대 받고 그 맛을 그림 그려 제출 해야 한다? 아무리 예술하는 나라라 한들 가당찮은가 ‘어찌 혀끝이 본 재미를 그림보고 토해내라 하는 것인지’

예전 어느 지면인가 한번 썼던 문구가 세삼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날 답사는 울돌목부터라고 했다. 점심 때가 다 되어서야 서울에서 오는 대절버스가 식당에 도착했다. 바로 상차림이 시작되는데 초장에 기죽이자는 것일까 상차림이 이만저만. 역시 하이라이트는 대자회접시 떡 벌어지게 내오는데 답사를 할려는 건지 말려는 건지 광어, 농어, 돔, 우럭 대표급들이 총 출동하는데 거기에 우리의 숭어는 끼지 못한다.

언젠가 TV 앞에 앉았는데 울돌목 숭어잡이라고 해서 떠들썩 하게 방영하는 것이었다. 팔뚝만한 숭어가 금방이라도 TV 밖으로 튀어 나오게 생겼다. 큰배도 집어 삼킬 것 같은 격랑의 소용돌이 바다 숭어는 미사일처럼 솟구치고 그러면 물가에 대기하고 있던 꾼은 여지없이 뜰채로 낚아 채 버리는 것이었다. 왜가리가 송사리 채듯.

잘 먹었으니 이동을 해야 하는데 비린 것을 먹었으니 걱정이다. 산사까지는 머지 않은 길 차량으로 40분 남짓 비린내를 거기까지 대려갈 수는 없는 일 예전 같으면 부정탄다고 부처님한태 혼줄이 났을 터.

요즘 어디 그런가. 그래도 나선다. 숲을 지나고 물을 지나고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바위돌을 돌아돌아 절집 마당에 들어섰을 때는 석양은 다산 초당 넘어 기울고 백련사 윤기나는 동백숲은 겨울 채비하느랴 이파리가 두텁다. 낮에 잘 먹었으니 절밥인들 구미가 있을까. 스님 설법으로 대신하고 밥값 시늉 내느라 애써 붓을 들었으나 방장스님의 법어같은 점 몇 개 선 몇가닥 끄적 대다가 그만 붓을 내던지고 말았다.

<끝>



* 프로필

-1957년 무안 출생

-연진회 미술원 1기 수료

-호남대학교 미술과 졸업

-조선대학교 대학원 순수미술학과 졸업

-2017 신세계갤러리 등 개인전 5회

-석사논문 ‘조선시대 이후의 농경도’

-저서 ‘선술집 풍경’(전라도 닷컴)

-2017 서암전통문화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