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역사에 ‘만약에(if)…’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426년전 조선시대로 시계를 되돌려보면 그러한 가정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에 한 수군(水軍) 장수가 없었다면’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일본 수군과 맞붙어 23전·23승·무패를 기록한 불멸의 그의 신화는 전라좌도 수군의 본진인 여수에서 시작된다. 그는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이다.



◇임진왜란 1년전 부터 전쟁 대비=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로 여수에 부임한 때는 1591년 음력 2월이다. 임진왜란이 터지기 불과 14개월 전이었다. 그때 장군은 정읍현감(종 6품)에서 진도군수(종5품)로 임명됐다가 부임도 하기 전에 다시 전라좌수사(정3품)로 천거됐다. 당시 사간원에서는 ‘어떻게 현령을 갑자기 수사(水使)에 승임시킬 수 있느냐’며 반발했다. 군수를 해군 사령관으로 발탁하는 파격적인 승진을 두고 벌어진 논란을 잠재운 이는 선조였다.

“다만 지금은 상규에 구애될 수 없다. 인재가 모자라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이면 충분히 감당할 터이니 관작의 고하를 따질 필요가 없다.”(선조실록 2월 16일)

전라좌수영 관할 구역은 ‘5관(官)·5포(浦)’였다. 5관은 순천도호부(여수·순천 일원)와 흥양(고흥)·광양·낙안·보성이고, 5포는 방답진(여수 돌산읍 군내리)·사도진(고흥 영남면 사도리)·여도진(고흥 점암면 여호리)·녹도진(고흥 도양읍 봉암리), 발포진(고흥 도화면 내발리)이다.

장군이 부임 이후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1592년 1월부터 틈틈이 일기를 썼기 때문이다. 전쟁을 예견한 듯 관할하는 수군 진영을 순시하며 전선(戰船)과 무기를 점검하고, 좌수영 동문에 ‘품(品)방’을 굴착하는 등 다양한 방어시설을 확충했다.

“쇠사슬을 건너질러 설치하는데 쓸 크고 작은 돌 80개를 실어왔다.”(1592년 2월 1일)

“날이 저물어서야 방답에 이르러 공사례(공사 간의 인사)를 마친 뒤 무기를 점검했다. 장전(長煎)과 편전(片煎)은 쓸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했으나 전선은 그런대로 완전하니 기쁘다.”(1592년 2월 26일)

장군이 전쟁을 대비해 만든 시설과 무기 중에 바다를 가로지르는 쇠사슬(鐵鎖)과 거북선이 눈에 띈다. 방비시설인 쇠사슬은 왜군이 전라좌수영을 기습할 경우를 대비해 좌수영 동쪽 종포와 돌산도 사이(현 이순신대교가 놓인 자리) 바다를 가로질러 설치했다고 한다. 여기에 사용된 돌은 성생원(현재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신곡마을)에서 떼오고, 나무는 두산도(현재 돌산)에서 베어왔다는 기록을 남겼다. 앞서 1479년(연산군 3년)에 전라좌수사 이량(1446∼1511) 장군이 왜구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돌산도 북쪽과 장군도 동쪽 사이 물길에 수중 제방을 쌓은 바 있다. 진남관앞에 세워진 ‘이량장군 방왜축제비’(防倭築堤碑)에 수중성 축조사실이 기록돼 있다.

충무공과 나대용 장군 등은 새로운 병기 ‘거북선’을 만들었다. 백병전에 능한 왜군의 특성을 고려해 판옥선에 지붕을 덮었다. 특히 완성된 시점이 절묘하다.

‘임진일기’에 거북선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기록돼 있다. 2월 8일에 거북선에 쓸 돛베(帆布) 29필을 받아, 4월 11일에 비로소 베돛을 만들었고, 4월 12일에 ‘식후에 배를 타고 거북선의 지자포, 현자포를 쏘았다’. 거북선을 종포 앞바다에 띄워 시운전하며 총통 발사까지 모든 테스트를 마친 때가 바로 왜군이 부산포에 몰려오기 하루 전날 이었다.

◇여수 시내에 45개소 충무공 유적=현재 여수 일원에는 충무공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있다. 진남관(국보 304호)과 거북선을 만든 ‘선소유적’(사적 392호), 장군의 공적을 새긴 ‘통제이공 수군대첩비’(보물 571호), 부하들이 장군을 추모해 세운 ‘타루비’(보물 1288호), 충무공과 이억기·안홍국 장군을 배향하는 충민사(사적 381호), 장군 어머니 변씨 부인이 5년동안 살았던 ‘이 충무공 자당 기거지’(여수시 지정 문화유산 1호)를 비롯해 모두 45개소의 이순신 관련 문화자원이 산재해 있다.

진남관(鎭南館)은 1599년에 삼도 수군통제사 겸 수군절도사 이시언이 충무공이 지휘소로 사용한 진해루가 있던 자리에 건립한 건물이다. 진남은 ‘남쪽 왜적을 진압해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다. 현재 건물은 숙종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18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정면 15칸, 측면 5칸(건물면적 226.4평) 크기로 현재 남아있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대 규모이다.

현재 진남관은 300년 만에 해체해 보수 정비작업을 벌이고 있다. 외부에서 보면 지상 4층 높이의 커다란 덧집으로 씌워져 있다. 내부에서 진행중인 해체·복원 과정이 궁금하면 여수시 홈페이지(www.yeosu.go.kr)내 ‘OK 통합예약’에서 사전 예약을 하면 매월 둘째 주와 넷째 주 토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견학(1회 30명 제한)할 수 있다. 또한 여수시는 동헌과 운주헌, 결승당 등 건물 8동에 대한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진남관 입구 임란유물 전시관내에는 전라좌수영성 축소 모형과 함께 두정갑(豆丁甲·원수용 갑옷), 참도(斬刀·명나라 신종이 이순신 장군에게 선물한 칼), 비격진천뢰(인마살상용 폭탄) 등 당시 쓰였던 다양한 유물(복제품)을 살펴볼 수 있다.

전라좌수영 내에 순천부 선소유적과 본영 선소(여수시 중앙동), 방답진 선소(여수시 돌산읍) 등 3곳이 있었다. 여수시 시전동 바닷가에 위치한 선소유적(사적 392호)을 바다에서 바라보면 가덕도와 장도가 선소를 가려준다. C자 모양을 한 굴강에서 거북선을 만들었다고 하며 주변에 대장간과 무기고, 군기고(수군기), 세검정(집무와 지휘소 기능 담당)이 복원돼 있다.

◇여수, 국난극복 중추적 역할=여수는 임진왜란때 남해안 제해권을 장악해 왜군을 격파하고 위기에 놓인 나라를 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593년 8월부터 1601년 3월까지 삼도 수군통제영의 본영이기도 했다. 지난 3월 30일 여수시 주최로 전남대 산학연구관에서 ‘충무공과 여수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날 전남대 송은일 교수는 ‘전라좌수영의 설치와 영향’이라는 논문을 통해 임진왜란 시기 여수, 전라좌수영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은 삼도 수군통제영의 본영으로 조선 수군의 총사령부 역할을 하였던 것을 물론이고 당시 해전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던 특수전함 거북선 3척 모두를 건조하였는가 하면 전선(판옥선, 협선) 약 150여척 정도를 신축하였다. 특히 전라좌수영은 임진왜란 중 발행하였던 피난민을 수용하여 안거(安居)시키면서 군량미까지 확보하는데 총력을 다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

/여수=김창화기자 ch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