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부는 바람, 바람 부는 봄/작은 가지 흔들리는 부는 봄바람/내 가슴 흔들리는 바람, 부는 봄/봄이라 바람이라 이 내 몸에는/꽃이라 술잔이라 하며 우노라/아, 봄! 내 마음 어디든 흩어지는 봄”〈김소월 작 ‘바람과 봄’〉

올 봄은 유난히도 중국 발 미세먼지 습격이 잦아서인지 없던 알러지로 병원 다니는 일도 생겨 봄꽃과 봄바람이 살짝 성가셔졌다. 그런데도 이 내 몸의 불편한 감각은 잠시, 여전히 봄날은 눈부시다.

봄의 전령은 역시 산수유 꽃이다. 굳이 먼 길 떠나지 않아도 자주 다니는 길목, 동네 공원에서 맨 처음 봄의 기별을 전해주는 생명이 산수유 노란 꽃이기 때문이다. 노란 꽃 몽실몽실 피어난 산수유는 누군가의 표현처럼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인 듯 아련하고, 살랑이는 봄바람에 꽃잎 흩어지면 나무 그늘마저도 샛노랗다.

서양화가 국중효(1947∼ )의 작품 ‘생명의 순환’(2002년 작)은 산수유 노란 꽃이 화면을 압도한다. 지리산 기슭 구례 산동마을이 아예 노란 물감으로 휘감긴 듯 그림 속 풍경은 색채도 형체도 해방이다. 오랜 고목의 기둥과 가지가 보일락 말락 꽃바람에 언뜻언뜻 스치고 노란 꽃 산수유의 절정은 눈으로 보기에도 분주할 만큼 꽃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운주사 석불, 산동네 판잣집, 나주 배밭과 아낙네, 광양 다압 마을 매화에 이어 국중효작가의 조형적 대상이 되고 있는 산수유는 십 수 년 전 교통사고로 한동안 화필을 잡지 못하고 고민하던 때에 생의 환희를 되찾게 해 준 계기이기도 했다. 짙은 흑갈색의 고목에서 틔운 노란 꽃잎은 소생하는 생명의 눈이자 생기였고 활력이었다.

얼마 전 목포대학을 정년퇴임하고 작업에 전념하고 있는 작가는 “산수유 꽃대궐을 이룬 산동마을에 처음 들어섰을 적의 그 감흥과 색채의 신바람을 잊지 못해 올 봄에도 이미 화구를 챙겨 지리산을 몇 차례 다녀왔다”고 한다.

〈광주비엔날레정책기획실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