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한 새벽 1시30분, 일행과 만나기 위해 광주문화예술회관 후문에 도착. 늦겨울 비가 내리더니 날씨도 마음도 스산하다. 인천공항 못미처 해장국집에서 된장국에 밥 한 그릇 거뜬히 해치우며 일상을 벗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기내식에 와인 한잔, 감정에도 중력이 있나 보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거울속의 거울’이란 곡에 잠시 무중력 상태가 된다. 찰칵찰칵 연신 셔터를 누르며 푸른 하늘 아주 높고 낮은 곳에서 지치지 않고 흘러가고 흘러오는 구름에 감정이 무장 해제됨을 느낀다.

시안(Xi’an, 西安)에 도착했다. 고대 유럽으로 통하는 무역로인 실크로드의 시작점과 돌들을 쌓아 만든 사막의 대상 행렬 조각상이 시안과 실크로드의 유구한 역사를 암시하고 있었다. 1000년 이상 긴 역사를 자랑한다는 회족거리는 중국 내에 거주하며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소수민족 거주지인데 양꼬치, 오징어 튀김, 꽃게 튀김 등 다양한 길거리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저녁식사로는 시진핑, 클린턴 등이 다녀간 덕발장 만두집에서 소, 돼지, 닭, 야채 등 16가지 다양한 재료로 만든 만두를 맛본다. 서봉주와 곁들이니 중국에 온 게 실감난다. 보고 듣고 맡으며 느껴지는 감각들에 더해 혀에서 느껴지는 즐거움과 호기심이 여행을 더욱 행복하게 한다.

식사 후 무질서한 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시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섬서가무쇼 공연을 하는 양광여도대극원 대극장이다. 섬서가무쇼는 시안이 위치한 섬서성 소수민족들이 보여주는 당나라 궁녀들의 춤이다. 한국어 안내방송이 전혀 없어 내용은 잘 모르겠으나 진한 색의 조화가 돋보이고 단원들의 부드러운 몸동작이 아름답다.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당나라 왕실 원림 화청지로 향한다. 양귀비와 당태종의 온천별궁이다. 정자와 누각, 뒤편으로 높은 산도 보이고, 양귀비가 즐겼다는 온천탕과 당태종의 온천탕, 대중탕 등을 볼 수 있다. 물에 닿을 듯 나른하게 늘어진 나뭇가지와 날렵하게 끝이 올라간 기와를 얹은 지붕…. 고풍스러운 이곳에서 황제와 사랑을 나눈 양귀비는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남성들의 권력 다툼 속에서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삶이 연민으로 다가온다.

시안을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거치게 되는 진시황릉과 병마용갱으로 갔다. 지금은 각각 다른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지만 원래는 하나의 거대한 무덤으로 설계되었다. 드넓은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황제답게 사후세계 역시 완벽하길 바랐던 진시황제의 노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도용들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모두 채색된 도용이었으나 발굴과정에서 햇빛에 노출되자 불과 몇 시간 만에 모두 색이 바래버렸다고 하는데 문득 절대권력 역시 결국엔 이처럼 허무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늦은 오후, 섬서요리로 저녁 만찬을 즐긴 후 춘절 행사로 등불축제를 하고 있는 대당부용원에 도착한다. 어마어마한 인파를 헤치고 멋진 야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누르지만 신통치 않다. 그저 야경에 감탄만 할 뿐이다.

세 번째 날 아침이 밝았다. 입학식으로 분주한 도로를 지나 항일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팔로군 시안 변사소 기념관’에 도착했다. 이곳은 해방 이후 건설된 전쟁기념관으로 항일전쟁 당시 혁명의 근거지다. 우리나라도 일제 침략이라는 아픈 역사를 갖고 있어서인지 묘한 동질감을 느껴졌다.

시안의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단연코 장안성(시안성)을 추천하고 싶다. 고층 빌딩과 고성누각의 어울림이 경복궁을 연상케 한다. 높이 12m의 장안성은 성벽 위의 너비가 10m가 넘고 총 길이도 13㎞에 달해 차도 다닐 법했다. 바로 이 성벽 위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오늘날 시안은 중국 서북내륙의 중심지이자 신흥공업지역으로 돋보이는 곳이다. 특히 관광 산업은 평균 수익이 매해 36.4%씩 증가하고 있는 시안의 대표 산업 중 하나다. 저녁식사로 한국식당에서 삼겹살을 먹고 내 생애 가장 아방궁 같은 시안의 노래방에서 꿈틀거리는 자본의 욕망을 느낀다. 과거 장안의 영화를 오늘날에 다시 재현해 보고자 도시 전체가 들썩인다.

이번 시안 방문은 내게 과거와 현재를 경험하게 했다. 특히 병마용갱, 진시황릉, 장안성은 압도적인 크기로 위용을 뽐냈고 방문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여행의 의의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반복되는 고단한 삶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삶의 여유를 느끼고자 함이다.

그러나 시안은 여유를 찾기엔 너무도 차갑고 엄했다. 과도하게 강압적이고 인위적인 유적들과 도시풍경 안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위압감을 느꼈다. 동시에 이곳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발현하고자 하는 거대한 욕망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이번 여행은 빛과 어둠을 함께 경험한 시간으로 기억될 듯하다.

여행하는 동안 나는 다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자극과 다양한 생각들, 변화무쌍했던 역사와 현재 사이에서 수많은 나로 분리됐다가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 점에서 여행은 시간과 감정을 압축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어떤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강 운 프로필

-전남대 예술대학 미술학과 졸업

-개인전:‘Sky, Touch the Air’(프랑수아 리블렉 갤러리·파리), ‘Play:Pray’(사비나미술관·서울), ‘물, 공기 그리고 꿈’(포스코 미술관, 서울 외 21회) 등

-그룹전:‘정원사의 시간’(블루메 미술관·파주), ‘2016 중·한 현대미술 20인전’(UCITY ART MUSEUM OF GAFA, 광저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