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 동네, 2개 생각

독일 뮌헨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남짓 거리에 무르나우(Murnau) 라는 조그마한 마을이 있다. 30여 년 전 독일에 도착해 짐을 푼 뮌헨을 떠나 첫 번째로 방문한 도시이기도 해 기억에 더 남는다. 독일 남쪽지방 전형적인 목가적이고 알프스와 호수를 배경으로 수려한 풍광을 지닌 휴양과 휴식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도시이기도 하다.

1908년 이 동네에 한 무리 작가들이 나타난다. 그 중 한사람,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원래 러시아대학 법학교수였던 그가 화가가 되겠다고 1896년 독일 뮌헨으로 이주해 그림공부를 하며 여러 나라들을 여행 했는데 돌아와 정착한 곳이 ‘무르나우’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미술사에 영원히 기록되는 최초의 ‘추상회화’를 제작했다.

사실 내가 이곳에 방문한 목적은 한 노(老)갤러리스트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한 때 독일에서 몇 개의 갤러리를 운영하던 젊은 시절을 가진 그는 은퇴 후 이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코코스카와 헨리 무어 작품이 있는 거실에서 마주 앉았다. 인자하고 미소 띤 얼굴, 그러나 사람 저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은 범상치 않았다. 지극한 눈빛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다 첫 질문이 “루나 백을 아느냐” 는 것이었다.

한국을 떠나오던 해, 1984년 1월1일 TV에서 인공위성을 연결해 전 세계로 ‘작품’이라며 방송하던 ‘굳모닝 오웰’을 잊을 순 없다. 저게 작품이란다, 백남준이라는 작가란다, 등등. 처음 들어보는 작가 이름과 처음 보는 ‘작품’을 어떻게 잊을수 있겠는가? 그리곤 두달후 한국을 떠났으니까.

‘루나 백’이 누구야? 서툰 독일어를 탓하며 되물어 봤을 때 그가 이번엔 영어로 또박또박 말해줬다. “비디오 아티스트 남준백” 난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일본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들었는데 왜 ‘백’이 지금 독일 뒤셀도르프미술대학교수이며 위대한 아방가디스트, 프론티어인지 그의 설명이 이어졌으나 잘 이해가 안 되었다. 한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헤어질 시간이 돼 그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어떤 작가가 되고 싶냐?” 고. 처음 백남준을 물었을 때 내가 잘 모르는 것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한국도 독일 같구나’ 라고.

작가는 두 부류가 있는데 자기나라에서만 명성 있는 작가가 있고, 또 한 부류는 자기나라 밖에서 유명한 작가가 있다고, 이런 작가를 ‘한국국적에, 또는 한국태생’ 이렇게 말하는데 아마도 백(남준)이 그런 작가 아니겠냐고. 너는 어떤 작가가 되고 싶냐고 나에게 재차 물었다.

솔직히 뭐라 내가 답했는지 나도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주위에서 나를 평하는 말 중에 ‘경계인’이라는 단어가 많은 걸 보면, 비로서 지금은 그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

‘무르나우’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을 때 한 뉴스를 들으며 잠시 멍하니 있었다. 사실 무르나우를 그만두고 이 뉴스에 관한 것을 쓸까 망설였다.

뉴스는 다름 아닌 광주비엔날레 ‘북한미술전시’에 관한 것이다. 전시기획자의 인터뷰까지 들으며 착잡해졌는데 이건 큰 논쟁거리가 될 수도 있으며 남북한 작가들의 싸움거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통일 전 독일에서 동서독작가 간에 소위 ‘아쉬록’ 논쟁이 벌어졌다. 점잖게 대충 ‘똥구X’ 정도로 번역 할 수 있겠는데, 그러나 아주 심한 욕으로 벌금을 내야 할 수도 있다.

논쟁의 핵심은 과연 동독미술, 즉 체제선전격인 사회주의리얼리즘 기반의 미술을 우리가 미술이라고 인정 할 수 있겠는가, 이다. 미술은 모름지기 이래라 저래라, 혹은 이건 되고 저건 안 되고 하는 환경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서독작가들 생각과 우리는 우리 나름 문화가 있다는 동독작가들 간의 다툼이었는데 결정적으로 논쟁에 기름을 부은 것은 서독정부에서 취한 동서독간의 화해와 이해를 위한 문화교류정책이었다. 이 정책에 반대해서 바셀리츠는 저런 동쪽 ‘똥’같은 작가와 쓰레기작품을 서독에 가지고 온다면 차라리 내가 교수를 관두겠다고 베를린예술대학을 나가 버렸고 이에 동조하는 많은 작가들, 특히 동독에서 문화적 망명하거나 탈출한 작가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이에 대해 반대로 서독에서 동독으로 망명한 동독 드레스덴 미술대학장이었던 발터씨는 “우리한테 잘 배우고 서쪽으로 도망 간 ‘똥’들이 잘 나간다”거나, “서쪽에 가서 ‘똥’ 같은 그림만 그리는 것들이 우리보고 ‘똥’이라고 한다”고 응수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세계미술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신표현주의 거장들, 즉 바셀리츠, 게르하르트 리히터, 펭크 등등 일련의 작가들이 모두 동독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서독으로 망명한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북한과 문화교류도 필요하고 미술전시도 필요하다. 반대로 남쪽미술이 북으로 가는 경우도 있을 것인데, 아직 우리나라 그 어떤 원로나 작가가 혹은 평론가가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북한에서 미술의 역할이 그들 체제에 대한 프로파간다 등 정해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것들과, 남한에서 작품 주제가, 내용이 마음에 안 든다고 철거하고, 나아가 아예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 관리했으면 오십보백보 아닐까.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로 아직 우리가 더 우월하다고 내놓을 만하지 못해서일까?

통독 이후 이 논쟁은 거의 일방적인 서쪽 승리로 끝나 버렸지만 이 논쟁을 보며 우리나라에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김유섭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졸업

-독일 베를린국립예술대학교·대학원졸업

-개인전 30여회 (서울, 광주, 독일,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

-베를린예술대학교 조형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