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최초의 여성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2)의 인생은 참으로 파란만장했다. 화가였던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는 딸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고 미술수련을 하게 했는데, 아버지의 동료이자 그녀에게 그림을 지도하던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아버지는 소송을 걸었지만 타시는 아르테미시아가 먼저 유혹했다며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했고,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피해자였던 아르테미시아는 모욕과 수난을 당하고 무명화가에게 팔려가다시피 결혼 후 피렌체로 이주해야 했다.

당시 피렌체 통치자 메디치 가문의 대공 코시모2세(1590∼1621)는 은둔하고 있던 아르테미시아에게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베는 유디트’라는 작품 제작을 의뢰한다. 그림이 완성되자 아르테미시아의 화실을 찾은 대공은 “아버지 솜씨보다 훨씬 더 낫다”는 격려와 함께 추가로 작품을 주문했고 과거의 스캔들을 묻는 대신 여성화가로서의 재능을 인정한다.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베는 유디트’와 더불어 아르테미시아의 명성을 높인 그림은 ‘수산나와 장로들’(1610년 작)이다. 구약성서 다니엘서에 나오는 수산나는 빼어난 용모에 부유한 가정의 아내였다. 존경받는 원로인 두 장로가 수산나에게 음욕을 품고 허락하지 않으면 외간남자와 간통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거짓 고발하겠다며 협박했다. 수산나는 비명을 지르며 저항했지만, 결국 수산나는 간통혐의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때 후일 이스라엘의 지혜로운 예언자가 된 다니엘이 두 장로에 대한 분리심문을 요청해 각기 다른 증언을 이끌어냄으로써 수산나가 누명을 벗게 된다.

아르테미시아는 목욕하는 수산나에게 두 장로가 갑자기 들이닥쳐 위협하는 모습을 뛰어난 기교로 그렸는데, 그 중 한 사람을 성폭행범 타시처럼 붉은 밤색 머리카락으로 묘사해 의미심장하다. 성폭행범과 진실을 다룬 이야기가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분노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씁쓸하다.

〈광주비엔날레재단 정책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