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동면이 고향인 나는 어린 시절(국민학교3학년 때인 1976년쯤) 마을에서 버스를 빌려 단체여행을 간 적이 있다. 깜빡 잠이 들었던지 졸다가 내린 곳이 운주사였다.

구불구불한 길을 가다 계곡논두렁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불상과 탑들을 보게 됐다. 마치 천상의 계곡에서 천사들이 조각을 하다 형상이 어긋나는 바람에 아무렇게나 버린 돌조각들으로 보였다. 그러나 어린 나의 눈에는 어찌나 신비롭고 아름답든지 한참이나 그곳에 붙박혀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의 충격은 어찌나 강렬하던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광주에 있는 어느 대학의 미대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젊은 치기에 방황을 하면서 가끔 운주사로 소풍을 가곤 했다. 젊은 날의 벅찬가슴을 어찌지 못해 낮술로 보냈던 곳도 운주사였다. 광주 대인동에 있는 터미널에서 아침 버스로 출발하면, 꼬박 반나절을 달려 운주사 입구에 도착한다. 입구에는 예외없이 막걸리와 간단한 먹을거리가 있었다. 당시 입구도 없었던 운주사 길은 잘 빚은 막걸리와 함께 1000년을 보내도 될 만큼 한적한 여유가 넘쳤다.

운주사의 기억은 온전히 나의 인생과 같이 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운주사가 비추는 신비의 불빛이 드리워져 있었다. 지금의 운주사는 오솔길이 정비돼 알아볼수 없을정도로 변했지만,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선명하게 뒤바뀐 그때의 풍경이 떠오른다.

외국에서 늦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형상을 표현한 것 또한 운주사의 흔적들이다. 마음속 운주사를 그린 덕분에 2008년 프랑스 후앙시 센마리팀(한국의 도의회)의회 미술관에서 개인전도 초대받았다.

지금도 운주사는 아늑한 안식처이다. 세상의 이런저런 일들로 혼란 할 때 그곳에 가면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인간세상 위에 떠있는 평온한 별빛이며, 길을 비추는 등대다.

지금까지 다양한 실험기법으로 운주사의 신비함을 표현해왔다. 지면에 발표한 그림들은 20여년을 고심한 작품이다.

다음은 운주사를 그린 그림을 글로 표현한 것이다.

제목은 ‘별이 빛나는 밤에 소리의 두께를 보다’다.

“운주사에 갔다. 찬란했던 시절 절반의 人爲가 세월이란 짝을 만나, 온 것의 자연으로 가는 찰라 사이의 신비, 사물을 자연에 맡긴 대신 인위는 자연의 영을 취했다. 우뚝 서 있거나 누워있는 것들의 인위는 이내 자연과 일치가 되어 천년의, 사랑이 되어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가슴으로 통하는 작은 갈색 눈에 기억된다.

제아무리 날렵한 지능을 가진 인간일지라도 바람의 시간은 속성으로 흉내 낼 수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한 그것의 속셈은, 물과 달과 해맑은 태양이 버무려져 여러 날이 지나서야 각각의 사물에 스며들어 모습을 드러내는데,

과연 장관이다. 온갖 사물들이 이것에 노출되면 맞춤복장을 하듯 각자의 정령들을 품는다. 바람과 사물이 만나는 지점에 물과 정확한 온도의 태양이 중매를 서고, 아주 조금의 인위적인 신의 간섭으로 이루어진 소리의 겹겹.

어떤 것은 사물의 껍데기에 쌓여 거대한 몸뚱이로 미미한 본질을 숨기고, 어떤 것은 제 살을 깎이고 깎여 날것인 채로의 황홀한 본질을 직접 드러낸다. 가끔은 거북하고 민망하지만 인간에게 직관적 깨달음을 주는 힘이 날것에 감춰져 있다.

어느덧 20년의 세월은 흘러, 나는 드라마 같은 기억을 더듬어본다. 화면에 보이는 거라곤 나무하나 석불하나.

허나, 그들과 한 몸이 된 온갖 바람의 소리와 흙의 냄새들…. 언젠가는 바다였을지 모를 물의 흔적까지 갖췄다.

화면의 여백엔 어느새 사랑의 열매가 숨 쉬고 있다.”

* 김상연 프로필

-전남대학교 미술학과 서양화전공

-중국미술대학 대학원 판화과 졸업

-마이클슐츠갤러리 초대전 (독일 베를린), 일단원공간 초대전(북경 중국), 기당미술관 초대전(서귀포) 등 개인전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