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을 돌아보면 참 감개무량하오. 나도 비재(非才)로 최초부터 제형배(諸兄輩) 동지로 더불어 독립운동의 획책의 말석에 참여하는 영광을 득하였거니와 과거 우리 동포의 충성되고 용감한 활동은 더 감사할 말이 없소. 다행히 우리 동포의 애국심과 단결력은 더욱 작열하고 임시정부의 기초와 각원의 화합도 더욱 공고하며 대정의 방침도 연말까지에 확립하였으니 금년부터는 전년에 배사( )한 대활동이 있을 줄 믿소. 그러나 정부만으로 어찌 하리오. 내외의 각단체와 국민이 일심일체가 되어 일일이라도 바라는 대사업을 성취하기에 육력(戮力)하기를 바라오.”(‘신년의 감상’·1920년 1월 10일 독립신문)



위 글은 1920년 신년을 맞아 독립신문에 실린 교통총장대리 김철의 글이다. 34세 젊은 선각자의 독립을 향한 결의와 포부가 읽혀진다. 그럼에도 일강은 자신을 겸허히 낮춘다. “독립운동의 획책의 말석에 참여하는 영광”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오로지 그의 꿈은 조국의 독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지만, 임정청사 건물 위로 겨울볕이 비친다. 구봉 마을은 볕을 받아 따사로운 기운이 감돈다. 여느 시골 마을과 다름없는 풍경이지만, 그러나 여느 마을과는 다른 기운이 느껴진다. 그것은 서릿발처럼 차가운 명징하면서도 또렷한 것으로 추호의 흐트러짐 없는 일강의 정신일 터였다.

짐작하건대 그 정신의 발현은 단심송(丹心松)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남편(김철 선생)에게 누가 될까봐, 김씨 여인은 중대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일제 헌병들은 수시로 집 주변에 숨어 감시했고 남편의 행방을 대라고 종용했으며 더러는 치근덕대기도 했다. 자신 때문에 남편이 잡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인은 소나무에 목을 매 자결한다.

눈이 부시게 푸른 소나무는 그곳에 서서 또 100여 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람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다 임정청사(1926∼1932) 건물로 들어선다. 상해 임정 당시의 건물을 고스란히 재현한 모습은 100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1층은 회의실과 주방으로 구성돼 있다. 2층과 3층은 각각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된 곳으로 책상, 침대를 비롯한 소품은 중국 현지에서 직접 제작한 것들이다. 특히 3층에는 1920년대 상해 한인거주지 거리를 재현한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는 국내뿐 아니라 국외 독립운동가와 함평 출신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자료가 비치돼 있다.

지난 2009년에 개관한 임정청사 건물은 독립운동의 역사가 집약된 곳이다. 김철 선생의 발자취와 애국지사들의 항일투쟁사 나아가 당대의 사회상과 생활상이 다양한 자료와 함께 전시돼 있다.

임정청사 바로 옆 ‘김철기념관’도 기억해야 할 공간이다. 2003년에 개관한 이곳에는 김철 선생의 생애와 애국의 발자취가 오롯이 투영돼 있다. 신한청년당 조직, 손병희 선생 등과 3·1독립운동 협의, 임정 당시의 활동상, 윤봉길의사의 거사 결정에 이르는 드라마틱한 역사가 응결돼 있다. 한마디로 애국정신을 받드는 교육의 장인 동시에 함평의 역사적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문화의 장이기도 하다.

작금이 개인의 행복이 우선시되는 사회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 누리는 자유와 행복, 그리고 물질적 풍요는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의 토대 위에서 일궈졌다. 빼앗긴 국권을 되찾고자 모든 것을 내던졌던 독립운동가들이 없었다면 누릴 수 없는 열매들이다. 오늘 우리시대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의 이름과 살아 숨쉬는 역사가 아닐지.



/글·사진=박성천기자 sky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