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간벽지, 몇 시간 째 버스는 구불구불 시골길을 덜컹거리며 달리고 있다.

절반이 넘게 깨진 유리창 사이로 들어오는 희뿌연 먼지들은 웅크려 앉은 내 무릎 위로 수북이 쌓여 있다.

몇 번을 털어 내면서 조금이라도 먼지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써보다가 포기한지 이미 오래다.

24인승을 개조해 만든 이 버스는 의자의 앞 뒤 간격마저 개조한 것인지 무릎이 앞좌석에 닿아 앉아 있기도 힘이 든다.

게다가 내가 앉은 자리는 버스의 뒷바퀴 쪽 자리라 무릎을 가슴팍에 잔뜩 끌어 앉고 있어야하기 때문에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힘든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이 사람들이 즐겨 씹는 잎담배의 부산물들이 바닥 여기저기 뱉어져 있어 더러워 죽을 지경이다. “오메 으짜쓰까잉∼”

처음 버스에 올라탈 때 의자 한쪽에 하얀 비닐봉지들이 걸려 있어서 이게 뭔가 싶었는데, 입으로 씹어댄 입담배 찌꺼기를 바닥에 뱉지 말고 봉지에 담아 버리라고 걸어둔 것이란다.

터미널을 빠져 나온 버스가 몇 차례 사람을 내려주고 태우고 하더니 여기저기 걸린 봉지들이 입속에서 뱉어져 나온 찌꺼기들로 볼록해진 채 버스의 덜컹거림과 같이 춤을 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조바심으로 신경 쓰여서 창밖 풍광을 즐길 세가 없다.

차가 속도를 줄이며 정차 하는가 싶더니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조심스레 톡톡 친다. (아마도 내가 외국 사람이어서 다소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자기가 내려야 되니 비켜달라는 거다.

개조된 버스는 좀 더 많은 사람을 태우기 위해 통로를 없애고 긴 널빤지를 연결해 자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뒷자리로 가거나 뒤에 있던 사람이 앞으로 나오려 할 때는 사람들이 앉은 자리 사이를 넘어 다닌다.

아주 오래 전에 군 제대 후 아르바이트로 얼마간 ‘완행버스 차장’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 때 당시 손님들을 많이 태우려고 만들어진 차장들만의 모토가 있었는데 ‘손님은 모시기 전에 황제처럼, 모신 후에는 짐짝처럼…’ 우린 그대로 짐짝이 된 기분이었다.

아침에 출발한 버스는 벌써 열 세 시간째를 달리고 있다. 생각해보라. 그 오랜 시간 비행기도 아닌 버스의 곤욕을…. 그러다가 점차 빼곡했던 버스도 좀 빈자리가 나고 여유가 생겼다. 자리를 넘나들던 차장은 종착지에 가까워져서 친구들을 만났는지 앞에서 카드게임을 하고 있다. 한참을 웃고 떠들며 왁자지껄 수선스럽다. 그렇게 얼마를 가다가 갑자기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날카로워지더니 우당탕탕 싸움이 났다. 싸움판에 끼어들자마자 피범벅이 된 운전수가 씩씩거리며 자리로 돌아가더니 시동을 걸고 위험스럽게 차를 내몬다.

몇몇이 차를 발로 차고 난리를 피우는데 속도를 줄인 차가 널따란 운동장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 경찰서다. 경찰들이 오고 싸움에 가담한 사람들이 줄줄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갑작스런 일에 다소 당황스런 우리에게 운전수가 내리라고 한다. 시간으로 보아 우린 목적지에 두 세 시간은 더 가야 하는데 어쩌느냐고 하니, 차 안 간단다. 화가 난 우리는 “버스비 다 내고 차 탔는데 이러는 법이 어디 있냐”며 큰소릴 치니 버스비 반을 내준다.

어둠이 내린 황량한 곳에 버려진 형과 나는 이 상황을 어찌할까 고민하다 멀리 가물가물한 빛이 모여 있는, 동네인 듯 해 보이는 곳까지 일단 걸어가기로 한다.

도달한 작은 마을엔 호텔 따위의 숙소라곤 있을 리 만무하고 신기한 듯 바라보는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의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한 집에서 재워주겠다고 한다.

이미 잠자리에 들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찐 고구마를 내어주고 자신들의 가족이 잠을 자는 이층에서 잠을 자라고 한다. 복층 형식의 이층에서는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데 온가족들이 같이 한 방에서 잠을 잔다. 부부와 세 명의 아이들이 자는 것 같은데 두 부부 사이로 한 명의 어린 아이가 있고 조금 떨어져서 두 아이가 자는 것 같은데 조금은 어른스러워 보이는 듯하다.

별 경험을 다 한다 싶은 생각과 별의별 호기심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데 옆에 누운 형은 벌써 코를 곤다.

아침, 가족들은 벌써 음식을 만들어 준비하고 고양이처럼 물만 묻힌 얼굴로 어정쩡한 우리를 환하게 반기며 자리에 앉으라 한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을 물어보는데 정오에 버스가 올 거란다.

그러니 차도 마시면서 쉬었다가 가라고 하는 듯하다. 일정에 차질이 생겨서 난감해 하던 차에 볼에 하얀 칠을 한 예쁜 여자아이가 손에 뭔가를 들고 조심스레 걸어온다. 차를 내 오는 것 같은데 아주 수줍은 미소로 내 눈을 잘 보지도 못한다.

아마도 이 마을에 외국인 여행자는 우리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기왕 늦어진 일정, 버스가 오기 전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 찬찬히 마을을 구경하기로 했다. 마을 이곳저곳을 구경 하는데 마을 전체가 들썩이는 느낌이다. 외국인을 처음 보게 된 마을 사람으로선 우리가 여간 신기해 보이는가 보다. 쭈뼛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가끔 용감한 아이들이 겸연쩍게 웃으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기도 한다.

어디서든 순박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들에게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시골의 소박한 풍경과 따뜻한 인심을 느끼게 되면서 이게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오래 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과 함께 걸을 땐 앞서도록 한발 물러서 배려하고, 어른 앞에서 크게 웃거나 떠들지 않는다. 물건을 건넬 때도 두 손으로 공손히 전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요즘의 우리나라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개인의 영달과 성공을 위해서 모든 인성을 뒷전으로 내던진 교육 현실. 더불어 살기 위한 최소한의 가정교육도 포기한 이기적인 삶들. 이미 우린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내버리고 내 멋으로, 내 중심으로만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퍼뜩 들었다.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남들이야 어떻든 자기만의 성을 쌓고 들어앉아 풍요로운 물질에 둘러싸여 잘 먹고 잘 입는 게 행복이 될까?

지난 저녁에 도착해 하룻밤을 묵고 아침나절을 함께 한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마치 잊혀 진 세계를 방문해 긴 시간을 머문 것처럼 가슴에 뜨거운 여운이 남는다.



김해성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20회

-쾰른아트페어, All About Korea(White Box, Munich, Germany)등 단체전 500여회

-조선대 평생교육원 전담교수, 한국미술협회 이사, 선과 색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