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회화의 선구였던 파울 클레(1897∼1940)는 ‘창조에의 고백’(1919년)이라는 글에서 자신의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현대예술은 보이지 않은 것, 보고 싶지 않고,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이도록 함으로써 때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지도 모른다.

재미화가 김원숙(1953∼ )의 작품 ‘외줄타기’(1991년 작)를 처음 마주했을 때 삶과 이상, 현실과 꿈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무심한 듯 동시에 단순하게 표현한 그림이 머릿속에 오래 맴돌았다. 어쩌면 현실 속 삶의 다양한 현장에서 정신 바짝 차리고 균형을 지켜야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전하는 것 같았다.

콸콸콸콸 세차게 흐르는 강물 위로 외줄을 타고 건너는 한 남자의 불안한 모습, 혼자서도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그 어깨 위로 이고지고 가야하는 무거운 삶이 얹혀있다.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잠깐 머뭇거리다가는 강물 위로 떨어져 멀리 흔적도 없이 흘러 떠내려 가버릴 것이다. 저 위태로운 강물을 어떻게 해야 무사히 건널 수 있을까?

그림을 그린 화가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화가가 참으로 힘든 시절에 그린 그림일 거라는 지레짐작을 했는데, 일기처럼 숨김없는 고백체의 그림을 그려온 작가의 화집 ‘삶은, 그림’(아트북스)을 통해 우리들이 살면서 심리적으로 회피했던 내면을 정직한 시선으로 포착해 공감을 준다. 홍익대 미대에 다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공부를 마친 화가는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작품전을 했으며 1978년에는 ‘미국의 여성작가’에 선정되기도 했다.

화가는 “멀리 보이는 따뜻한 창이 있는 집은 모두의 희망이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거꾸로’와 ‘바로’만큼이나 달라서 오히려 그 낙원에서 멀리 떠나가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위험 속에 평화로움이, 갈등 속에 안정이, 외로움 속에 따뜻함이, 떨림 속에 고요가 있는 삶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광주비엔날레광주폴리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