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로 띄우는 그림편지] <16> 오스트리아서 아이슬란드까지-임의진
2018년 01월 18일(목) 00:00 가가
그대, 방랑은 어떠한가 …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와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시작해 독일, 노르웨이, 아이슬란드로 이어지는 여정의 정취를 담은 ‘북쪽으로 난 길’.
따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낯선 타국에선 차갑고 추운 냉기조차 싫지만은 않다. 늘어선 자작나무는 눈결같이 새하얗고 보드란 애인이라도 만난 듯 뛰어가 안아보고 싶다. 눈이 켜켜 쌓이고 몇날며칠 녹지 않는 풍경. ‘설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되뇌지 않아도 시야에 가득한 눈더미가 경이로운 풍경. 난로에 담긴 장작불엔 마치 늑대의 눈이 이글거리는 것 같다.
매운 연기도 ‘달고나’를 씹는 듯 달콤하고 촉촉해라. 얼어 오그라든 손가락을 펴려고 난로에 오선지를 집어 던졌다는 슈베르트. 음표가 타오르는 그 순간은 어떤 광시곡의 서주였을까. 눈이 퍽퍽 내리면, 자동으로 찾아 듣게 되는 ‘겨울 나그네’. ‘한스 젠더’의 지휘로 듣는 대편성은 놀랍기조차 하다. 한편 테너 ‘피셔 디스카우’의 목소리로 듣는 ‘겨울 나그네’는 언제 들어도 감사하며 또 친근하여라.
슈베르트의 고향 오스트리아 빈. 음악의 수도답게 빈을 거쳐간 작곡가들은 어마무시하다.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 브람스, 말러, 요한 시트라우스, 쇤베르크, 리하르트 시트라우스… 그 가운데 빈 토박이는 역시 슈베르트. 31살에 유명을 달리한 슈베르트는 매우 가난한 형편 때문에 괴로운 생애였다. 결혼을 안했다보다 못한 게 맞았고, 매음굴에서 성병을 얻었으며, 베토벤 바로 곁에 묻힌 무덤만이 사후 명예가 되었다. 평생 베토벤을 흠모하고 존경했던 그는 유언조차도 그의 곁에 묻어달라는 소박한 내용이었다.
한번은 빈에서 출발하여 독일을 거쳐 ‘북쪽(노르드)으로 난 길(웨이)’이라는 국명의 노르웨이, 하고도 섬나라 아이슬란드까지 올라갔었다. 가방엔 빌헬름 뮐러의 시집 ‘겨울 나그네’가 비닐 커버까지 덮고 늘 따라다녔다. 테너가 들려주는 노래 말고, 내가 읽고 또 내 귀로 듣는 그 순간의 감격을 간직하고파서다. 소설가 하루키는 이런 걸 ‘소확행’이라 칭했던가.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 말이다. 여행지에서, 그 여행지의 풍광과 어울리는 시나 소설을 읽는 재미. 여행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즐거움이겠다.
이곳에 사는 나그네쥐들은 흥미롭다. 그린란드 북극 지방의 툰드라 지방에 서식하는 녀석들은 4년마다 수백만마리가 낭떠러지로 떨어져 집단 자살을 시도한단다. 개체수가 많아지면 종족 보전을 위해 이런 일을 저지른다지. 죽음이란 생명이 끊어지는 일이면서 동시에 인연, 관계가 멀어지는 일이기도 하겠다.
유랑자, 방랑자는 고독한 죽음의 길로 성큼 나아가는 구도와 수련의 연습생이다. 비약하자면 겨울 나그네들이 있어 지구촌은 비좁지 않고 숨 쉴 만해진다. 도심이 텅 빈 듯 허전하다면 유랑자, 방랑자들이 길을 떠나 자리를 비운 덕분이리라.
인간 세계는 이주민, 이방인, 순례자들의 출몰과 이탈, 탈향으로 진화되고 또 진일보된다. 무리지어 정신없이 살아가는 군집들에서 비켜서기로 결심한 고독한 나그네쥐. 절벽 아래로 떨어져가는 불우한 방랑자들. 비운의 생이 인간계의 숨통을 열어주는 신비. 그 맨 앞에 슈베르트가 서 있다.
‘겨울 나그네’는 피셔 디스카우의 노래가 역시 스탠더드. 1961년 외르크 데무스가 피아노 반주를 한 서른아홉의 피셔는 우렁차면서도 단호하다. 제럴드 무어가 반주한 1972년 녹음은 원숙미와 노련미가 확연히 느껴진다. 디스카우도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겨울 나그네’들은 모두 북쪽으로, 설산으로, 북망산천으로 여행을 떠난 것이다. 15번곡 ‘까마귀’의 일부분은 생명을 죄다 갉아먹고 죽음의 검은 숲으로 들어가는 여정을 그려낸다. “까마귀여. 나를 노려보면서도 왜 어찌하지는 않는 거니. 결국엔 내 몸을 뜯어먹으려 들 테지. 너 까마귀여!”
설원에 접어들면 생은 춥고 외로우며 곤고해진다. 길조차도 보이지 않아 막다른 처지. 나그네는 수염에 달라붙은 새하얀 눈발에 얼어있다. 죽음이 덮치기 전에 콧노래를 한번 부르는 것은 어떠한가. 인생을 재물에 대한 욕망으로 채워봐야 갈증만 커갈 뿐이렷다. 아라비아의 대부호 아들이 유학을 떠나 등교한 날 아빠에게 보낸 문자. “창피해서 학교를 못 다니겠습니다. 여기 애들은 큰 기차(지하철)를 타고 학교에 오더군요.” 대번 도착한 아빠의 답신. “헉! 집안 망신을 시킬 뻔 했구나.” 당장 기차를 한대 사서 보냈더란다.
기는 놈 위에 훨훨 나는 놈 있다. 그러니 그대. 차라리 무전여행, 방랑은 어떠한가. 인생의 깊은 맛을 느끼게 되리라. 차갑고 고독하며 짭짤한 이 맛. 슈베르트의 가곡을 깔고 걸어가는 순례의 이 맛.
슈베르트의 고향 오스트리아 빈. 음악의 수도답게 빈을 거쳐간 작곡가들은 어마무시하다.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 브람스, 말러, 요한 시트라우스, 쇤베르크, 리하르트 시트라우스… 그 가운데 빈 토박이는 역시 슈베르트. 31살에 유명을 달리한 슈베르트는 매우 가난한 형편 때문에 괴로운 생애였다. 결혼을 안했다보다 못한 게 맞았고, 매음굴에서 성병을 얻었으며, 베토벤 바로 곁에 묻힌 무덤만이 사후 명예가 되었다. 평생 베토벤을 흠모하고 존경했던 그는 유언조차도 그의 곁에 묻어달라는 소박한 내용이었다.
유랑자, 방랑자는 고독한 죽음의 길로 성큼 나아가는 구도와 수련의 연습생이다. 비약하자면 겨울 나그네들이 있어 지구촌은 비좁지 않고 숨 쉴 만해진다. 도심이 텅 빈 듯 허전하다면 유랑자, 방랑자들이 길을 떠나 자리를 비운 덕분이리라.
인간 세계는 이주민, 이방인, 순례자들의 출몰과 이탈, 탈향으로 진화되고 또 진일보된다. 무리지어 정신없이 살아가는 군집들에서 비켜서기로 결심한 고독한 나그네쥐. 절벽 아래로 떨어져가는 불우한 방랑자들. 비운의 생이 인간계의 숨통을 열어주는 신비. 그 맨 앞에 슈베르트가 서 있다.
‘겨울 나그네’는 피셔 디스카우의 노래가 역시 스탠더드. 1961년 외르크 데무스가 피아노 반주를 한 서른아홉의 피셔는 우렁차면서도 단호하다. 제럴드 무어가 반주한 1972년 녹음은 원숙미와 노련미가 확연히 느껴진다. 디스카우도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겨울 나그네’들은 모두 북쪽으로, 설산으로, 북망산천으로 여행을 떠난 것이다. 15번곡 ‘까마귀’의 일부분은 생명을 죄다 갉아먹고 죽음의 검은 숲으로 들어가는 여정을 그려낸다. “까마귀여. 나를 노려보면서도 왜 어찌하지는 않는 거니. 결국엔 내 몸을 뜯어먹으려 들 테지. 너 까마귀여!”
설원에 접어들면 생은 춥고 외로우며 곤고해진다. 길조차도 보이지 않아 막다른 처지. 나그네는 수염에 달라붙은 새하얀 눈발에 얼어있다. 죽음이 덮치기 전에 콧노래를 한번 부르는 것은 어떠한가. 인생을 재물에 대한 욕망으로 채워봐야 갈증만 커갈 뿐이렷다. 아라비아의 대부호 아들이 유학을 떠나 등교한 날 아빠에게 보낸 문자. “창피해서 학교를 못 다니겠습니다. 여기 애들은 큰 기차(지하철)를 타고 학교에 오더군요.” 대번 도착한 아빠의 답신. “헉! 집안 망신을 시킬 뻔 했구나.” 당장 기차를 한대 사서 보냈더란다.
기는 놈 위에 훨훨 나는 놈 있다. 그러니 그대. 차라리 무전여행, 방랑은 어떠한가. 인생의 깊은 맛을 느끼게 되리라. 차갑고 고독하며 짭짤한 이 맛. 슈베르트의 가곡을 깔고 걸어가는 순례의 이 맛.
